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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 Jul 22. 2022

무량사, 동종은 어디에 있을까?

만수산 무량사

길을 완전히 잘못 들지는 않았나 봅니다. 결국 ‘무량사’ 이정표를 찾았습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요. 이건 마치 헤어져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던 친구를 만난 기분입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산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하군요.


아내와 아들에게만 우산 하나씩 챙겨주고, 지팡이 삼아 들고 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또 이렇게 잔머리를 굴리고 있네요. 우산 들기 귀찮았거든요.


일주문

일주문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일주문에는 ‘만수산무량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답니다. 만수산은 성주산의 한 지맥이라고 하지요.


​울창한 숲과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에 순간 더위가 싹 달아났습니다. 비가 꽤 많이 온 후라 그런지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물소리가 요란스럽네요.


계곡을 흐르는 다리를 건너 비탈진 경사 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저란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가요? 다른 날 같으면, 절집을 따라 들어가는 길이 포장된 아스팔트 길이라 서운했을 건데, 오늘 같이 비 오는 날은 흙길이 아닌 것에 고마워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에 위치한 무량사는 통일신라 문성왕 (서기 839-856) 때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고려 초기에 대중창하여 대웅전, 극락전, 천불전, 응진전, 명부전 등의 불전과 30여 동의 요사와 12 암자가 있었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없어지고, 조선 인조(1623~1649) 때 진묵선사에 의해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유형문화재 제57호, 무량사 당간지주

천왕문을 몇 걸음 남겨두고, 빗줄기가 굵어집니다. 아내는 숲 길에서 접어 두었던 우산을 펼쳐 들었습니다. 저도 그 속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서있는 당간지주를 바라보았습니다.


유형문화재 제57호인 이 당간지주는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합니다. 모서리를 돌아가며 양각한 것은 통일신라에  굳어진 양식이라고 하는데, 그대로 계승하여 고려 초에 만들었답니다.


아내와 당간지주를 보고 있는 사이, 아이는 먼저 천왕문에 들어섰습디다. 그 안에 있는 사천왕상 앞에서 아이가 합장을 하고 있네요. 앞서 가는 사람들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이지만, 그 모습이 기특해 불자가 아닌 저희아이를 따라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 봅니다.


이 천왕문만 통과하면, 정면에 웅장한 극락전이 보이고 그 앞으로 오층 석탑과 석등이 나란히 배치되어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오른쪽으론 명부전과 보기에도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름드리나무가 보이고 범종각이 천왕문 오른쪽 담 바로 앞에 차분히 앉아있지요. 그리고 좌측에는 요사채와 더 안쪽으로 해우소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극락전, 오층 석탑, 석등

절집 마당을 천천히 걸어 석등 앞에 섰습니다. 이 석등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하네요.


보물 제23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971년 해체 수리할 때 보살상이 새겨진 거울 모양의 둥근 청동 원판 2장이 나와 무량사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석등 뒤에 서있는 오층 석탑은 백제 석탑의 특징을 가진 고려 초기의 석탑이라고 합니다. 이 석탑도 해체 수리할 때, 금동 불상과 사리 장치가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보물 제18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석탑을 지나, 극락전(보물 제356호) 앞에 섰습니다. 이 극락전은 임진왜란 후 다시 세운 불전으로 무량사의 본전이랍니다. 외부에서 보면 2층이지만 내부는 1,2층이 터져 하나의 큰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죠.

그런데 분명히 천왕문으로 들어올 때는 아내와 아들과 모두 함께였는데, 그 둘은 제가 사진 찍고 안내문 읽는 사이에 저 멀리 사라져 버렸습니다.


빗줄기는 아까보다 더 굵어지는데, 우산을 가진 둘이 사라져서 난감해졌죠.


그때, 극락전 위 편에 있는 산신각, 영정각, 영산전, 천불전 등을 먼저 돌아보고, 유유히 내려오고 있는 둘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우산도 없이 혼자 절집 구경을 했더니 어느새 옷이 촉촉이 젖어버렸네요. 극락전 뒷길에 서있던 아내에게 달려가 우산 밑을 파고들었습니다.


“기왓장에서도 풀들이 자라네! 무생물들도 자비가 넘쳐 나나 봐!”


우산 들기 싫어 꾀를 부리다가 된통 당한 것을 티 내지 않으려 무심히 말을 흘렸봅니다.


"그러네!"



무심코 흘린 제  얘기지만,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극락전 기와 위에서 풀들이 자라고 있었어요. 그들은 정말 대단한 생명력을 지녔습니다. 풀들도 저런데 하물며 인간인 우리는 더 강해야 하지 않을까요?


극락전을 지나 다시 밑으로 내려오는데 아까는 못 보고 지나쳤던 동종에 대한 안내문이 극락전 앞에 있습니다. 자세히 읽어볼 생각에 그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답니다. 동종은 저쪽 끝에 있는데, 왜 안내문은 이쪽에 있을까요?


동종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아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이해도 못할 아이에게 좀 과장된 몸짓으로 설명을 시작했죠.


“얘야! 잘 봐봐! 이 종이 아주 옛날에 만든 것이란다. 밑에 꽃무늬 좀 봐. 멋있지? 그리고 이 화려한 장식들 좀 봐! 옛날엔 정말 어떻게 이런 모양을 만들었을까?”


종을 한 바퀴 빙 돌며 여기저기 보라고 말하는 순간 허탈한 웃음이 저도 모르게 터져 나왔습니다. 종 한쪽 구석에 한글로, 시주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답니다.

“미안! 이게 아닌가 봐!”


별로 관심도 없었던 아이는, 그저 엄마에게 달려가 버렸습니다. 멀리서 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내도 한번 '' 웃어주고는, 아이와 함께 천왕문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종 앞에서 멍하니 혼잣말로 ‘그럼 진짜 동종은 어디에 있는 건가?’하며 절집을 한 바퀴 빙둘러보았습니다. 하지만, 물어볼 사람도 보이지 않네요. 진짜 동종은 어디에 있나요?


결국 별도리 없이 천왕문을 지나 비탈길을 내달려, 다시 계곡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광명문’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어라! 처음에 제가 어디로 들어왔더라? 같은 곳, 같은 길을 따라왔는데 나가는 문은 다르네요.


무량사 광명문

매표소를 지나고, 완전히 절에서 나왔다 싶어 뒤를 보았습니다. ‘만수산무량사’라는 일주문을 통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또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일주문 앞 뒤에 적힌 편액이 다른 것이었답니다.


그리고,  나중에 확인해보니, 1636년(조선 인조 14년)에 제작된 무량사 동종은 극락전 안에 있다고 합니다.  진즉에 알았다면, 보고 올 수 있었을 것인데  아쉽네요. 혹시, 다음에 다시 오라는 부처님의 배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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