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에서 2월엔 이맘때 아빠가 방에서 서서히 혼자 세상을 떠났을까 생각하며 아주 추운 겨울 하늘을 바라봤고 날씨가 심통을 부리는 3월 초엔 작년 이맘때는 참 춥고 서늘해서 뼈가 시렸지 회상을 했다.
3월 중순이 된 오늘은 오랜만에 고모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잘 지내지? 시간 참 빠르다.
아빠 돌아가신 지 일 년이 되어간다..
제사는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물어보려고 문자 해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구나. 참 새삼스럽고 이상했다. 나는 여전히 49일을 겨우 넘기고 있는 것만 같은데 벌써 봄이 왔고 1주기가 문 앞에 있다니 말이다. 1년이 지난 후엔 내 모습은 어떨까 정말 많이 생각해 보고 상상했는데 참 씁쓸하다. 지금 내 감정은 무덤덤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또 저 깊숙한 곳에서 감정을 통제하고 있어서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좌절감이 있는 듯하다. 나는 살면서 제사를 지내본 기억이 별로 없다. 해본 적도 없고 할 이유도 없었다. 외할아버지 제사 때마다 유언에 따라 식구들과 거하게 차려 먹고 외가족들이 할머니집에 앉아 이야기하는 날이었고, 새아빠의 친가는 갈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은 아주 오래전부터 엄마와 할머니 사이에 생겨난 깊은 갈등의 골로 매번 새아빠와 싸우면서 가족의 의미가 상실되어 만나지도 찾아가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또 생각만큼 1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 스스로 자체 변화는 많았지만 보이지 않는 감정적 성장이지 경제적으로나 지휘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내가 기대한 변화라고 하면 아마도 아빠를 모실 수 있는 힘이었다. 그 비용은 아빠가 남은 유족연금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나의 안전을 위해 갑작스럽게 닥친 이사 준비와 당장의 생활비 문제로 잠정 중단되었다. 사실 최근에 고모에게 아빠가 남긴 유족연금을 받았다고 커밍아웃을 했고 열심히 수목장이며 납골당이며 알아봤지만 막판에 고모는 반대하셨다. 차라리 그 돈으로 나중에 결혼할 때 보태라고 설득하셨는데 마음은 십분 이해한다. 비용적인 부담도 컸고 모셨다가 관리를 못하게 되거나 괜히 난처한 상황이 벌어질까 봐 걱정하시는 마음에 반대하신다는 것을 알기에 고민해 보겠다고 말은 해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결국 난 모시는 일을 선택할 것이다. 선택의 책임은 결국 나에게 있고 후회도 나에게 있어 누가 대신해주지 않으니까. 지금은 현실적 문제로 한 발짝 뒤로 물러난 것뿐 포기한 건 아니다.
다만, 내 마음이 이리도 걸리는 이유는 제사도 아빠의 유골을 모시는 일도 나에게 우선 결정권이 있고 전적으로 나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일인데 막상 1주기가 되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모르는 것 투성이라 좌절감과 아빠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하다.
이럴 때 보면 난 마냥 어른은 아니라고 느낀다. 지금보다 더 어린 학생 때도 철없는 부모대신 가장 아닌 가장 역할을 하면서 모든 무겁고 중대한 결정을 다 내가 했을 땐 이보다 더한 일이 있을 수 있나? 이것보다 더 중대한 것을 보거 결정할 일이 있을까 꽤나 어른처럼 보였는데 지금 내 모습을 보니 그냥 ‘아이’였다. 그때도, 지금도 그냥 서툴고 어린 ‘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뭐,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