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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Mar 24. 2023

여전히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한결같은 태도

이제 두렵지 않아, 죄책감도 갖지 않을거야

3월 15일 23시, 그날 저녁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현관 밖으로 다른 집 초인종이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와 다르게 “어? 설마 엄마가 날 찾나?” 생각에서 지울 수 없어 등골이 사늘했지만 에이, 내가 좀 예민했구나 싶었다. 사람의 촉은 정말 말도 안 되게 작동하게 때려 맞추기도 한다는 것을 대략 2시간이 지나서 깨달았다. 조용한 집에서 찌뿌둥한 몸을 깨우고 느릿느릿 샤워를 하여 옷을 벗고 샤워부스로 들어간 순간 들려오는 아주 미세한 소리.


관리사무소의 호출이었다. 의아한 마음에 통화버튼을 누르니 대뜸 내 이름을 대고 맞냐고 묻는다. 찰나에 올라오는 불안감에 심장이 두근두근, 정신없이 뛰었다.


“네, 저 맞는데 무슨 일이시죠?”

“아~ 지금 어머님께서 찾는다고 경비실에 와 있어요.”

“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응답하지 말고 없는 척했어야 했다. 나는 왜 그 작은 소리를 언뜻 들었을까 후회가 된다. 놀란 가슴 부여잡고 최대한 침착하게 이야기했다.


“엄마요? 경비실에요?”

“호수 모르셔서 찾아다니다 경비실에 오셔서 알려달라고 기다리고 계시는데 알려드려도 되나요?”


관리사무소 직원의 말은 내 의견을 묻는 어투가 아니라 통보식이었기에 살짝 당황한 나는 재빨리 “아뇨, 절대 알려주지 마세요. 알려주지 마시라고요.”

돌아오는 대답은 ‘왜요?’, 의아해서 되묻는 질문은 아니었고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어이없어하는 어투에 정말 답답했다. 더욱 차분하게 알려주지 말라고 재차 얘기했지만 직원의 답은 가관이었다.


“아니~ 엄마가 찾아왔는데 왜 안 알려줘요? 아시잖아요, 친족이면 뭐, 저기, 뭐야 동사무소에서 서류 떼오면 권한이 없어요. 그냥 알려주는 수밖에요.”

“제가 성인인데 그게 뭔 소용이에요. 당사자가 싫다는데 무슨, 황당하네요.”

“그래도, 가족이라는 것만 확인... “ 전에 실종신고를 받고 찾아온 경찰조차도 내가 성인이기에 법적으로 어떤 것도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지가 뭔데 한다 만다 이러는 가. 어처구니 없어진 난 단호하게 알려주지 말고 지금 바로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는 의사를 강력하게 표현했다. 떨떠름해진 직원은 말을 더듬으며 ’아, 예...‘하며 끊으려 했으나 내가 말을 덧붙였다.


“저, 혹시 엄마한테 한 마디만 전달해 주실 수 있나요?”

“네? 뭐..., 그러세요.”

“꼭 전해주세요. 한 번만 더 찾아오면 스토킹으로 신고할 거라고.” 이 말에 직원은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한 듯 무언가 켕기는 사람처럼 급하게 통화종료를 눌렀다. 숨을 크게 마셨다 내쉰 후 112에 전화해 ’ 아동학대 피해자인데 가해자가 집에 찾아왔어요. 도와주세요.‘ 신고했다. 내 전화를 받은 경찰은 여러 차례 신고내역에 대해 똑같은 걸 3번이고 복창하며 확인을 했고 빠르게 처리되지 않는 상황에 짜증 났지만 천천히 다시 대답해 준 것으로 신고내역을 남겼다. 전화를 끊고 알고 교류하면 내 사정을 알고 있는 청년주택 이웃에게 관리사무소와의 통화, 경찰 신고 등 이야기하자 말 같지 않다, 뭣도 모르면서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하며 나 대신 화를 내주었다. 또 그날 내가 시킨 로켓프레쉬백이 문 앞에 있었는데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나의 사정을 아는 또 다른 이웃에게 연락해서 내가 사는 호실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프레쉬백에 무언가 물건이 있는 건 아닌지 확인도 해주셨다.


신고접수를 받고 가까운 파출소에서 출동하겠다는 연락을 주셨는데 1월에 만났던 사람이 맞는지 물어보셨다. 사실 난 1월에 출동해서 찾아온 경찰 한 명의 개인번호를 알고 있었는데(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찾아오면 응급으로 연락하라고 번호를 주셨다.) 그 번호로 연락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그건, 나에게 신고한 내역이라는 증거가 필요했고 또 다른 이유는 그 경찰이 현재 근무 여부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엄마의 번호와 새아빠의 번호를 받아 다시 오지 못 하도록 경고조치를 취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고 이 상황을 알게 된 이웃들은 나 대신 상황을 살피러 1층으로 내려가셨다.


또다시 찾아올 거라곤 생각했지만 경찰도, 나도 그 시기가 너무 빨리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씻다 말고 뛰쳐나와 불안함에 방 이리저리 다니며 손톱을 뜯다 보니 온 방에 물이 떨어져 있어 당장이라도 미끄러질 것 같았다. 2분, 3분 천천히 시간이 흐르고 경찰이 건 통화 전화벨이 울렸다.


“네, 일단 경비실에 가보니 이미 가셨다고 해서 전화통화해 보니 광주로 가고 계시다고 들었고요. 주변에 오지 말라고 경고조치도 일단 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네..,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님이 가져오신 등기가 있다고 해요. 경비실에서 등기 뒤에 쓴 작은 편지가 있다고 해서 봤는데 별다른 내용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어요. 편지 볼지 말지는 편하게 선택하시면 돼요. 이제 걱정하지 마시고 쉬세요. 혹시 또 무슨 일 있거나 하면 바로 경찰에 도움요청하시면 돼요. “

“네...”


전화를 끊고 멍하니 벽을 보고 있었는데 바로 나 대신 내려가서 상황을 봐주신 분들의 연락이 왔다.


“여기 별일 없어요. 경찰에 신고했죠? (다른 분과 작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는 사람 다 경찰인가 봐. 어머 그럼 6명 다 경찰이야?’ 경찰이 왔다 갔고, 등기를 남기고 갔다고 해서 보니까 별다른 말은 없었어요. 경비실에 잘 말해뒀으니까, 또 찾아오면 말 안 하실 거예요. 나중에 내려와서 한 번 더 설명하면 좋겠어요. “


6명의 경찰, 난 많으면 2명 정도 출동했겠지 했다. 사는 동안 이럴 일이 있나 생각해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었다. 단순히 피해가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심각한 사안으로 보고 출동한 경찰 수는 무슨 말로도 복잡 미묘하게 어질러진 마음을 말로 허용할 수 없었다. 나 대신 밖에 있는 것들을 봐주고 직접 나서서 상황도 확인해 주는 사람들. 풀썩 주저앉고 싶었다. 악몽의 순간 연속이었던 아주 어린 나에게 내려진 구원처럼 느껴졌다. 어둠 속에 있는 상처 가득한 어린 나에게 준 작은 빛줄기였다.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났고 해결되어 안전함 때문일까 안락하고 마음이 평화로웠다. 다시 샤워부스로 들어가 씻으면서 되짚으니 울 것 같다가 도 고마운 마음에 마음이 무거웠다. 이웃분에게 카톡이 왔는데 ‘어머님이 등기에 편지 쓴 거 찍어오긴 했어요. 보내달라고 하면 보내줄게요.’ 대체 그 등기가 뭐라고 이 늦은 밤에, 그것도 멀디 먼 광주에서 왔을까. 어떠면 앞으로의 중요한 열쇠인가? 싶었다. 보고 싶지 않지만 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보내달라고 답장을 보냈다.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등기? 뭐, 아빠가 돌아가신 걸 알았나? 아니면 무슨 중요한 내용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해 간단히 옷을 입고 편의점에서 비타민 음료를 사서 경비실에 드리며 상황을 설명하고 등기를 받았다. 막상 받고 보니 궁금해서 경비실에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등기 뒤에 쓰인 편지를 읽었다.


각색해서 짧게 요약하자면 ‘너 따위가 나 없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치사해서 나도 번호 바꿀 거고 재계발 때문에 이사 간다. 너도 이사 가고 우리 연락하지 말자.’ 저주의 뉘앙스가 가득 담긴 짤막한 메모 같은 글을 보니 입에서 “미친, 미친 거 아냐?” 터져 나왔다. 경찰과 경비 아저씨에게 듣기론 나가기 전 경비실 그 자리에서 썼다고 했으니 아무래도 ‘그’ 말을 듣고 욱하는 마음에 쓴 것으로 보였다. 내가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꼭 전해주라고 했던 ‘그 한 마디’ 말이다.


재빨리 등기 봉투에 안에 든 종이를 꺼냈다. 작년 10월쯤 날짜가 적혀 있었고 줄 노트 한 장을 대충 찢어 쓴 글이 보였다. 자신이 산 집에 대해 내가 상속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하겠다, 현재 자신은 나에게 보증금을 상속하고 있다. 그 외에 초등학생 때부터 현재까지 일에 대해(방임과 학대를 가한 사실) 잘못이 없으니 할 말이 없고 미안한 마음을 왜 가져야 하냐 등의 정말 찢어서 잘근잘근 발로 뭉개도 될 정도의 편지였다. 그 뒤에는 나에게 사랑한다는 문구도 썼던데 구역질이 나고 정말 하찮다는 말 말곤 할 말이 없어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버리지 않고 증거품으로 가지고 있기로 했다.


난 또, 진짜 무슨 중요한 등기인 줄. 애초에 매번 동생만 생각하고 퍽하면 차별하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나한테 집을 줄 거라곤 생각 안 했고, 제발 나한테 빚도 주지 말고 집도 주지 말라고 애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참으로 보고 “이게 인간이냐.” 욕설이 입 밖으로 터지듯 나왔다. 아니 그리고 편지지까진 바라지 않는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집에 A4 용지도 많으면서 노트 한 장 대충 찢어서 쓰다니 퍽이나 딸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구나 싶었다.


요즘 학폭 가해자들이 방송에 나오고 피해 사실을 밝힌 피해자에게 대중들 보는 곳에선 사과를 하지만 뒤에선 고소를 하거나 조리돌림 시도하려는 등의 태도가 큰 화제가 될 때마다 ’ 가해자는 잘못으로 인식하지 않고 잘못이나 반성을 하지 않는다.‘ 항상 느꼈다. 그걸 내 눈으로 직접 보니 씁쓸하기 때론 분하기도 한다.


며칠 후 상담 갔을 때,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기가 차 엄마로서, 인간으로서도 아주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얘기하셨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차분하면서도 씩씩하게 경찰이나 방면으로 공적인 힘을 사용해서 대응한 것에 대해 칭찬해 주셨다. 욱하듯 찾아온 엄마에게 아주 큰 한 방이었다고, 늘 이렇게 해왔으니 당연히 통할 줄 알았던 수법인데 당황해서 급하게 돌아간 것 같아 보인다고 하셨다.


엄마가 진심으로 사과했다면 흔들렸을까? 다시 연락하진 않아도 아마 증오하는 마음이 조금은 사그라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는 뻔뻔하게 할 말도 없다 하고 잘못인지 모르는 태도 덕분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당신 따위를 인간의 짓이 아니라고 인간 실격이라고 말하며 원만과 증오하는 마음에 대해 한 톨의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괜찮아서. 밤 11시에 찾아와서 고작 나한테 남긴 말이 “너, 나 없이 절대 못 살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네가 아픈 엄마를 버리고 얼마나 잘 사는지 보자. 넌 얼마 안 가서 후회할 거야.” 남긴 글을 보며 들려줄 수 없는 대답을 한다.


응, 엄마랑 연락하고 연 이어갈 바에 후회하면 살게. 근데 당신은 절대 모를 거야.

내가 후회하며 돌아오길 기다리겠지만 지금 내 세상은 어느 때보다 더 안전하고 참 따뜻해.
오히려 엄마가 내 엄마여서 사는 모든 시간들이 불행했고 아팠고 처참했고 죽고 싶었어.

밥 먹는 재미를 알게 됐고, 웬만한 요리는 다 할 줄 알고 밥도 얼마나 잘 먹는지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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