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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 Nov 03. 2022

다락방 사무실에서 희망을 찾다

잭 호이어의 증언 3

요즘의 젊은 세대는 상상하기도 어렵겠지만, 1982년에는 아직 데스크톱 컴퓨터, 랩탑 컴퓨터, 워드 프로세서가 없었다. 당연히 이메일이나 팩스기도 없었다. 대부분의 비즈니스는 편지나 텔렉스(텔레 프린터로 송수신되는 메시지 전달 장치)로 이루어졌다. 호이어의 사장으로 근무할 때 내 편지는 비서가 타이핑해주었다. 나 자신은 전혀 타이핑할 줄 몰랐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는 날 가지고 나온 IBM의 골프볼 타이프라이터는 한 동안 플라스틱 커버로 덮어놓고 있었다.



정말 다행히도 나의 아내인 레오나르다는 타이핑에 능숙했다. 덕분에 영어와 프랑스어로 편지를 보내야 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문제는 독일어 편지였다. 전문적인 비서가 필요했지만 당시에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 내 딸의 친구들 중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집에서 쉬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우리 집에서 몇 마일 떨어진 낡은 건물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낮에 나는 독일어로 비즈니스 편지를 손글씨로 써서 저녁에 IBM 타자기를 차에 싣고 그 아이의 아파트로 찾아갔다. 



아이를 낳기 전에 비서로 일했던 젊은 엄마의 도움으로 세련된 비즈니스 편지를 작성해서 다음 날 아침에 집의 다락방에 마련된 나의 작은 사무실로 돌아왔다. 편지에는 어쩔 수 없이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 넣었다. 문제는 텔렉스였다. 당시 비즈니스에는 텔렉스가 필수였다. 집에 텔렉스가 없었으므로 베른 우체국의 텔렉스 번호를 적어 넣었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젊은 아가씨에게 맛있는 초콜릿 한 박스를 선물하며 나한테로 텔렉스가 오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1982년 9월의 어느 날, 베른의 ATAG라는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공작기계를 만드는 회사의 대표자들을 만나볼 생각이 있냐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의 문제는 갑자기 판매가 줄어들어 주문을 받아 적는 공책이 텅 비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6개월 동안 일주일에 3일간 공장을 방문하는 컬선턴트 계약을 했다. 물론 주어진 임무는 회사가 적자에서 벗어나 흑자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의 회사를 운영하며 239명의 직원을 몇 년에 걸쳐 80명으로 감원했던 것에 비하면 의뢰받은 일은 해결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공장을 방문하여 문제점을 파악한 후 공정을 일부 바꾸어 원가를 절감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해주었다. 그 결과 연말에 예상되었던 엄청난 적자에서 벗어나 약간 이익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1983년 3월 말까지 약간의 규모 축소는 불가피했지만 다시 이익을 남기는 회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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