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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몰랑맘 Nov 21. 2024

화난 할아버지

더 많이 웃는 걸로

요즘 트럼프 할아버지가 신문에 매일 나온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열흘동안, 아니 사실 민주당 후보 해리스와 경합하면서도 매일 등장하긴 했다. 귀에 총이 스쳤던 때도 1면을 장식했고, 스캔들이나 이슈가 꾸준히 있어 왔던지라 나처럼 꼭 신문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매번 화가 난듯한 그의 얼굴을 자주 봤어야 했다. 이쯤 되니 아이와 트럼프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 할아버지가 됐네.”


세계 평화나 반도체 산업을 비롯한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그렇지만, 일단 한 치 앞이 우려스럽다. 당장 이번 겨울방학에 아이들과 미국에 가야 하는데, 1400원을 넘어버리는 환율은 어찌하면 좋을까.


아이는 사실 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같은 구호나 정책도 잘 모르고, 이 할아버지가 되건 해리스가 되건 개의치 않는다. 속으로는 여자인 해리스를 조금 응원하긴 했다고 하지만 말이다. 그 마저도 옆에서 계속 얘기를 하니 그때만 '아' 하는 정도지, 오늘 간식으로 떡을 먹을지 빵을 먹을지보다 중요한 일이 아니다.


사실 10살 아이의 견해나 생각은 아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어른의 영향을 받는 듯하다. 관세니 반도체니 방산이니 미군 주둔 비용이니 설명을 해봐야 아이는 그런가 보다 한다. 그저 그가 등장할 때마다 추문과 인성을 운운하며 우려하는 엄마. 당장에 회사 실적과 정책에 타격을 주는 그를 탓하는 아빠의 태도를 통과해 트럼프라는 사람의 개념을 정립할 뿐이다. 게다가 덩치도 키도 큰 할아버지가 늘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으니 좋게 볼 이유가 없다.


"근데, 트럼프는 왜 이렇게 계속 화를 내는 거야?"


아이는 대상을 향한 사랑하는 두 어른의 태도만큼이나그 대상 본연의 표정을 눈여겨본다. 대부분 연설을 하거나 토론하는 모습이니 인상을 쓰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사실 웃는 사진도 많기는 하다. 얼마 전엔 정치 인사들과 활짝 웃으며 햄버거를 먹는 기사도 실렸고, 네이버에 트럼프를 검색하면 웃는 얼굴이 프로필 사진으로 나온다. 싫은건 싫은거지만, 한 가지면만 보게 하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웃을 때도 있어. 그런데 아무래도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심각한 일들에 대해 늘 생각하고, 말해야 하니 그런 얼굴이 나오는 게 아닐까?"


"그래도 바이든 얼굴은 안 그랬는데."


그렇게 말하니 또 할 말이 없다. 나이가 많아 사퇴한 바이든 할아버지를 연민하던 아이였다. 무슨 당이건, 어떤 일을 했건,  앞으로의 비전이 어찌 됐건 여전히 아이는 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어떤 할아버지가 인상을 많이 쓰는지, 더 많이 웃는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찾아보니 트럼프는 1946년생, 바이든은 1942년 생이다. 트럼프의 4년 임기가 끝나고 나면 딱 지금의 바이든 나이가 되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바이든을 나이를 이유로 끌어내려놓고, 4살 차이인 트럼프 할아버지를 뽑았을까?


아이의 말에 얼마 전에 함께 읽었던 마이클 샌델의 ‘10대를 위한 공정하다는 착각’을 떠올렸다.



결국 대중은 자신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엘리트들의 주장과는 정반대인 선택을 골라 투표했습니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대중은 엘리트들을 향해 분노했고, 그 분노가 투표를 통해 드러났던 것입니다. _ 10대를 위한 공정하다는 착각 29p



정확하게 2016년 브렉시트와 트럼프당선에 대한 마이클샌델의 견해다. 이렇게 얘기하면 좀 쉬울까.


엄마도 너희를 사랑하지만, 엄마가 너무 화가 나면 상처 주는 말들을 하지. 그러면 안된다는걸 앙면서도 말이야. 너도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가 너무 무섭게 혼을 내면 엄마가 싫다고, 그런 엄마는 필요 없다고 얘기할 때가 있잖아. 말 그대로 ‘홧김에’ 내뱉는 말들 말이야. 아마 미국인들도 트럼프의 문제는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당장의 생활이 힘드니 ‘홧김에’ 화끈한 트럼프를 투표해 보자는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홧김에 한 투표건 심사숙고한 고민의 결과이건 어쨌든 트럼프가 또 한 번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요 며칠 갖고 있던 주식들이 폭락했지만, 다시 조금씩 오르는 추세다. 칩스법으로 받을 수 있었던 지원금을 못 받게 될 수도 있지만, 바이오법 혜택을 받게 될지 모른단다. 방산업도 조명을 받고 있고. 환율은 이미 1400원대를 뚫었지만, 더 치솟을지는 미지수다. 환율이라는 게 양국의 기준금리며 경제 전반의 복잡한 정황들을 담고 있는 지표이니 조금 더 지켜볼 일이다. 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사그라든 건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좋은 점들을  발견하고, 기회를 찾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사실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따로 있다. 바로 더 많이 웃어야겠다는 것! 아이가 가장 많이 보고 있는 사람은 트럼프도 바이든도 아닌 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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