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이나 Dec 08. 2024

브런치스토리의 발견

편집자에서 작가로

편집자로 십여 년을 살았지만 막상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골머리 썩는 책보다는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예능을 가까이 했던 것으로 보면, 나는 그리 책을 좋아하지는 않은 성싶었다. 편집자라고 뭐, 책을 다 좋아해야 되나? 뭔가 모를 찔림에 그런 생각을 할지언정 끝내 책을 집어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능력 없는 편집자가 되었나? 그래서 오래 일한 출판사의 매출이 기울었나?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퇴근 이후에도 책을 읽고 서점을 쫓아다니지 않아서? 아마도 그럴 것이다.     


작년 이맘때 다니던 출판사에서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당장 이 주 안에 일을 마무리하고 끝내자는 말에 나는 놀라기도 했지만 왠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대표가 일주일 뒤에 통보를 철회해서 결국 다시 일하게 되었지만 난 언제 또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불안했다. 어쨌든 다음 행보를 모색해 두자고 생각했다. 

     

거창하게 다음 행보라니 웃기지만, 정규직 편집자의 퇴사 뒤에는 당연하게도 프리랜서 편집자의 길이 있다. 알다시피 사회 전반적으로 힘들듯 출판 업계도 그렇다. 출판은 사양 산업이라고 하니 그만큼 팔리는 책을 기획하는 기획 편집자가 절실하단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과연 팔리는 기획 편집자인가? 하고 고민한 겨를도 없었다. 내 코가 석 자였으니까. 내가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고민해서 나올 답이 아니라 나를 고용한 사람이 판단할 일이 아닌가.     


자연스럽게 지인 찬스를 택했고, 현역 편집이사인 그는 반가워하면서 만나자고 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출판사의 외주 편집자로 지난 일 년간 십여 권의 책 기획안을 만들거나 검토했으며 현재 여섯 권의 책을 맡고 있다. 그런데 그 출판사 내부에 일이 너무 많다 보니 내부 편집자, 디자이너, 글작가, 그림작가, 외주 편집자를 왔다 갔다 하며 진행해야 할 일이 거의 시작조차 안 되고 있다. 출판사의 출간 일정에 끼지도 못하고 있는 셈. 여기서 나는 또 하나의 기로에 섰다. 첫 번째, 두 번째 출판사의 일 외에 또 다른 외주 편집 일을 구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무심히 컴퓨터를 뒤지고 있는데 그전에 작가의 꿈을 안고 써 두었던 동화와 소설 원고를 발견했다. 당시 남편에게만 보여주고 그냥 컴퓨터 안에 잠재우고 있던 나의 이야기들이었다. 처음에는 이 원고가 어디서 왔지 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이게 정말 내가 지은 이야기라고? 그전에 작가로서 내가 쓴 이야기를 다시 읽어 보고 자신이 없어 그대로 묻어 뒀다면, 이제는 편집자로서 읽어 보고 어떻게든 세상 밖으로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속에 담아 두면 뭐 하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 여기 있소!’하고 내놔야지.     


원고를 하나하나 읽어 보며 조금씩 고치고 브런치스토리에 올리는 과정에서 나는 퇴근 후에도 일정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했다. 워낙에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지라 집에서는 되도록 의자에 앉기가 싫었다. 원고도 많이 읽다 보니 책을 읽기가 싫었고. 그러다 보니 어쩌다 책을 보더라도 추리, 스릴러 소설 위주로 읽었다. 뭔가 깊이 있는 생각을 하기가 싫어서, 그냥 좀 단순하게 살고 싶어서. 그랬던 내가 ‘집에서’, ‘쉬는 시간에’ 자발적으로 규칙적으로 글을 만지고 있게 되다니.     


처음에는 브런치스토리라는 플랫폼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금방 이해가 안 되었다. 그래도 그냥 무작정 글을 올렸다. 하다 보니 브런치매거진이란 게 있어서 그냥 브런치매거진에 글을 올렸다. 이야기가 완성되자 브런치북으로 묶을 수 있다고 해서 묶었다. 한 권 묶으니까 그제야 뭔가 익숙해져서 다른 작가들의 글을 천천히 읽어 볼 여유를 갖게 되었다.      


주로 에세이나 칼럼이 많았다. 나는 관심사인 소설을 읽고 싶었는데, 브런치에서는 카테고리가 없는 건지 검색창에 ‘소설’이라고 검색하는 수밖에 없었다. 카테고리가 있으면 좋겠다. 내가 못 찾는 건가? 어쨌든 먼저 구독해 주신 분들 글들부터 읽는데 사실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나 열정적이고 진실한 글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이렇게나 똑똑하고 현명하고 순수한 마음들이 여기에 다 모여 있는 걸 이제야 알았다니! 그동안 의미 없이 죽여 왔던 시간들을 아까워하며 눈을 휘둥그레 뜨고 침만 꼴깍꼴깍 삼켰다.     

 

브런치스토리는 내 글이 출간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떠나서 자신을 표현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들의 거대한 소통의 장이었다. 내 이야기를 풀어놓고, 내 애끓는 심정을 토해놓고, 나의 자부심을 높이 띄우는 곳이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감동하고 감탄하고 공감하며 나를 돌아보고 성장하는 곳이었다. 짧고 통찰력 있는 글, 길고 깊은 글 속에서 성숙한 사람들의 존재를 느꼈고 그래서 사회와 생활과 타성에 치여 얼마간 냉소적이었던 내 마음이 순화되고 따뜻하고 든든해지는 걸 느꼈다.      


익숙한 자리를 박탈당함으로써 시작된 방황은 브런치스토리에서 조금 안정을 찾은 듯하다. 한동안 브런치스토리에 머무를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