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이 아닌, 슈퍼'맨'
'장면 너머의 말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에 여러분을 찾아오지만, 오늘은 특별편으로 토요일에 따로 뵙습니다. :)
영화가 다 말하지 못한 것들, 그 장면 너머의 말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짚어보며 깊이 있는 감상의 길라잡이, 그리고 새로운 생각의 물꼬가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영화는 2025년 개봉한 해외 영화 『슈퍼맨』입니다.
친한 동료 선생님이 작년 급훈으로 썼던 문장이 생각난다.
남이 깨면 후라이, 내가 깨면 병아리
제임스 건의 영화 슈퍼맨은 DCU라는 새 둥지에 놓인 ‘알’로서, 팬덤과 평단의 체온을 고스란이 받고 있다. 재밌게도, 영화 속 슈퍼맨 역시 남이 깨느냐 아니면 스스로 깨고 나오느냐의 문제로 씨름을 한다. 기존의 슈퍼맨에서 우리가 주목했던 점이 슈퍼맨이 가진 초인적인 힘(Super)이 어떻게 드러나느냐-였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슈퍼맨이 가진 인간적인 면모(man)이 어떻게 쌓여가는지 말해준다.
이는 리부트된 DCU의 첫영화로서도 상당히 의미있는 시도인데, 중심 캐릭터의 서사와 캐릭터성을 잘 쌓아가 ‘이런 이들이 모여서 펼칠 이야기’자체를 궁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시의적절하게도, ‘멀티버스’라는 소재에 잡아먹혀 허우적대는 마블과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세계관을 우뚝 세운다.
유산과 유언을 그대로 따르던 존재가,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오는 여정을 따라가며, 그는 단순한 슈퍼파워를 지닌 존재를 넘어, 한 사람의 인간으로 완성되는 이야기,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주어진 것에 순응하며 흔들리는 슈퍼맨
이전 시리즈의 슈퍼맨은 과묵한 카리스마와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힘이 돋보이는 존재였다면, 이번 시리즈의 슈퍼맨은 정의롭고 따뜻하면서도 흔들리는 마음이 돋보이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의 정의로움과 따뜻함은 다름 아닌 친부모가 남긴 유언 때문이다. 늘 선한 마음을 품고 살아라. 정의롭게 남을 도와라-슈퍼맨이 첫 패배 후 회복하며 보고 듣는 것 역시, 늘 그에게 위로를 주었던 그의 친부모가 남긴 마지막 영상이었다. 뒷부분이 삭제되어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앞부분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이유가 되었기 때문에.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슈퍼맨은 늘 흔들렸다. 왜냐하면 그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 부모로부터 주어진 것에 순응한 삶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의를 추구하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복잡한 국제정세 때문에 수세에 몰리기도 한다. 적이야 주먹으로 깨부수면 되지만, 여론은 그럴 수 없는 노릇이다. 로이스와 인터뷰를 하면서 드러나는 그 흔들리는 마음은, 그의 타고난 기질이나 성격이라기보다 앞서 말한 그 환경적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정말 큰 문제가 영화 시작하자마자 주어진다. 상기한 ‘첫 패배’가, 클라이막스로 치닫기 전의 중후반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자마자-그것도 나레이션으로 언급되기 때문이다. 주어진 초인적 힘으로 위기를 극복해나가며 정의를 추구해 온 그의 동력은, 영화 시작과 함께 한풀 크게 꺾이며 시작한다. 그리고 이후로도 그는 영화 내내 때리는 것만큼이나 많이 얻어맞는다.
2. 생략된 유산
친부모의 영상에서, 그는 가장 강력한 존재라고 늘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패배했다. 자신에게 늘 등불이 되어주었던 유언의 유산이 틀린 것일까? 놀랍게도, 영화는 그렇다고 말한다.
슈퍼맨을 사회적으로 완전히 몰락시키기 위한 건수를 찾던 렉스 루터는, 슈퍼맨의 기지로 쳐들어가 그의 부모가 남긴 유산을 발견한다. 그리고 파손된 뒷부분을 복원하는데, 그 내용은 충격적이게도 ‘그런 힘으로 지구를 정복하고 다스려라. 인간들은 미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이다.’였다. 이 메시지가 세상에 공개되자, 슈퍼맨에 대한 여론은 급격히 악화 되기 시작한다. 패배하고도 훌훌 털고 일어나 날아가던 슈퍼맨이었지만, 자신을 슈퍼쓰레기라 부르는 여론에는 길길이 날뛰었던 슈퍼맨. 자신의 힘에 대한 것보다, 그 힘으로 추구하는 정의에 대한 모독이 더 큰 상처가 되었다. 그랬기에 이 위기는 그에게 더욱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싸울 이유를 잃은 슈퍼맨은 혼란스러워한다. 정의롭지 않은 방법으로 괴수를 물리치는 동료집단 ‘저스티스 갱’의 방식에 혀를 차던 그로서, 자신이 추구하던 정의의 전제 자체가 부정당했다는 것은 패배 이상의 패배였다.
온전한 휴식을 위해 안전 가옥을 찾아 양부모의 집으로 온 그는, 그의 양부에게 정말 중요한 조언을 듣게 된다.
“부모가 자식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권리는 없단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며 길을 만들어가는 존재란다.”
친부모는 자식을 낳을 때 선택할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양부모는 자식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사랑으로 온전히 져 온 양부모에게서, 그는 자신이 정의를 추구하는 또다른 이유 – 정의롭게 살아라는 명령이 아닌, 사랑받는 삶을 살아온 경험에 기대어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
3. 최후의 대결: 주먹은 머리를 이길 수 없다
돌아온 슈퍼맨은,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준 울트라맨과 다시 조우하게 된다. 이상하리만치 자신과 대등한 힘에, 자신의 패턴을 면밀히 분석한 렉스 루터의 지시가 합쳐지니 슈퍼맨으로선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심지어 울트라맨은 다름 아닌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여 만들어진 자신의 클론이었다. 렉스 루터는 슈퍼맨을 압도하면서 말한다.
“주먹은 머리를 이길 수 없어!”
지난 삼 년 간 슈퍼맨에 대한 시기 질투로 그를 면밀히 분석해 온 루터는, 드디어 그를 넘어설 수 있다는 감격에 울부짖는다. 그러나 그 말은 이제 슈퍼맨의 각성과 겹치게 된다. 그의 클론이지만 지성이 떨어져 루터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울트라맨을 잡기 위해, 그의 동료 크립토를 불러와 원격 카메라와 송신기를 부수기 시작한다. 루터의 저 말을 되돌려주며.
“그래. 주먹(super)은 머리(man)를 이길 수 없지!”
울트라맨은 슈퍼맨의 완벽한 안티테제다. 초인적인 힘만 있고 사유와 의지는 결여된 존재. 단순히 악한 신념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그 무엇도 없는 껍데기 같은 존재. 그는 ‘힘과 과학 지성이 결합된 위대한 결정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존재의 이유를 잃은 병기’에 불과하다. 결국 그는 루터가 깨버린 후라이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슈퍼맨의 완벽한 안티테제가 된 것이다.
아무튼 지성도 의지도 없이 힘만 남은 울트라맨에게, 슈퍼맨은 의지와 힘을 두루 갖춘 존재가 되어 그를 점차 압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형지물을 활용한 전술로 그를 처치한 후 렉스 루터가 있는 곳으로 도착한 그. 분노에 차서 ‘너는 인간도 뭣도 아니야’라고 일갈하는 루터에게 슈퍼맨은 외친다.
“나도 기쁨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낀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을 한다. 나 역시 인간이다.”
4. 人間 - 서로 기대어 있는 존재들 사이에서
문제는 도심의 렉스 루터와 울트라맨만이 아니었다. 자한푸르를 침공하는 보라비아군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슈퍼맨은 메트로폴리스에 있었고, 보라비아군은 국경을 넘어 자한푸르를 이미 침공하고 있었다.
그때, 슈퍼맨을 한숨 쉬게 만들었던 ‘저스티스 갱’이 등장한다. 그들은 슈퍼맨을 대신하여 자한푸르를 지키고, 렉스 루터와 밀약한 보라비아군을 막으며 슈퍼맨의 빈자리를 메꾸는 동료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저스티스 리그의 슬로건은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였다. 하지만 정작 영화에서는 슈퍼맨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멤버들의 모습만 보여줬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제임스 건은 보다 세련되고 완성도 있게 이 메시지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정말로 슈퍼맨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었다. 식상하지만 그만큼 고전적인 비유, 서로 기대어있기에 사람 인(人)이라는 말. 영화가 선택하기로 한 슈퍼‘맨’은, 이 부분을 정말 탄탄하게 쌓은 서사를 통해 넌지시 건네게 된다. 영웅의 클래식이라 할 수 있는 슈퍼맨답게, 식상할 수 있는 메시지를 클래식으로 제공하는 셈이다.
5. ‘슈퍼’맨에서 슈퍼‘맨’으로
영화 내도록 많이 얻어맞은 슈퍼맨은 그만큼 숱한 죽음의 위기를 겪게 되는데, 그 때마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낸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도움들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들이 품어준 사랑 덕분에 그는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었다.
이제 그의 회복을 담당하는 영상은 친부모의 유언이 아니라 양부모와의 추억으로 대체하게 된다. 주체적으로 슈퍼맨의 부모가 되기로 결정하여 참된 내리 사랑을 준 존재와의 기억. 사랑받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 슈퍼맨. 그렇게 하늘에서 홀로 땅으로 내다 꽂히며 등장했던 슈퍼맨은, 로이스와 함께 날아오르게 된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슈퍼맨에게 기대했던 것, 슈퍼맨이 스스로에게 기대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오래도록 super의 어떠함을 원했으나, 제임스 건은 우리에게 어떠한 man으로 거듭나는지를 보여준다. 초중반, 렉스 루터가 ‘그는 인간이 아니야. superman이라니, superit이면 몰라도.’라고 했지만, 이제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는 진정 super‘man’이란 것을.
세상 모두가 사랑받고 도움을 받고 살아가듯, 슈퍼맨 역시 그러한 존재라고. 그래서 그는 메타휴먼의 몸으로 우리 곁에 있으나 인간으로 계속 남을 수 있다고.
오늘의 특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장면은 끝났지만, 그 너머에 남겨진 말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무릅니다. 다음 주 금요일 오후 5시, 또 다른 장면 너머의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평안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