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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카레 Jul 22. 2024

미국 운전 초보가 2500Km 달린 사연

< 미국 여행기 7 >

 

지금 나는 미국 서쪽 맨 끝에 위치한 워싱턴 주에 있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건 넓고 넓은 미국 땅에 어쩌자고 이같이 건조하고 척박한 곳에 회사를 차렸을까 하는 점이다. 지어진 회사를 한국의 기업이 인수한 것이지만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나의 식구가 이곳에서 근무하게 된 사실은 더욱 생경하다.    

  

사는 일은 의문투성이고 우연의 집합체이다. 우연이라는 점들로 이루어진 선위를 그저 맹목적으로 따라갈 뿐이다. 남의 나라 그것도 광활한 땅 한가운데 놓이고 보니 우주에 떠다니는 작은 먼지에 비유되는 인간의 숙명이 잘 와닿는다. 어서 빨리 회사가 정상화되어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남편이 속한 회사가 이곳 태양광 회사를 인수하기 전까지 이곳에는 한국인이 한 명도 거주하지 않았다. 한국인 부재인 도시의 기록을 깬 건 그와 몇몇 동료들이다.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는 여름의 뜨거운 태양, 겨울의 음울한 추위 때문에 견디기 힘들어했다. 사실은 날씨 때문이 아닌 외로움이 가장 큰 이유였으리라.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삼 년째 접어드는 세월은 적응과 이해를 낳아 그저 견뎌낼 뿐인것 같다.  

     

땅이 넓은 이 나라는 국내 이동 때도 비행기가 흔한 대중교통이 된다. 미국이 지금과 같은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지리적 위치와 비옥한 넓은 땅을 손꼽는다. 여러 차례 말하고 있지만 차로 달리다 보면 넓은 땅은 부럽다는 말 외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서부 맨 끝에서 여행을 위해 떠나려면 자동차로 여행할 수 있는 곳은 매우 한정적이다. 작년에 갔던 라스베이거스와 그랜드캐니언도 서부에 위치하지만, 비행기를 이용해야만 했다. 이번 여행지로 Yellowstone을 정하게 된 데에는 자차로 이동이 가능한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지리적 여건 때문에 한국에서 여행 오기에는 쉽지 않은 코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여행지로 꼽은 가장 큰 이유는 그곳이 가진 자연의 신비로움 때문이다.  

    

Yellowstone은 남편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한 곳이다. 아쉽게도 바쁜 시기와 겹쳐 그는 갈 수 없었지만, 아들딸의 든든한 지원을 업고 셋이 여행을 감행했다. 무모한 도전이 될까 염려되었지만, 아들이 낸 용기에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Interstate 90번 Freeway는 미국 동서 간 주를 넘나드는 고속도로이다. 땅덩어리가 넓어서인지 고속도로를 드나드는 램프가 자유롭고 간편해서 부담이 없었다. 첫날, 보즈만까지 약 800km를 달리는데 내내 90번 도로만 달렸다. 차의 크루즈 기능을 십분 활용할 수 있었다. 가속페달을 밟지 않아도 지정된 속도로 주행할 수 있어 다리에 오는 피로감을 줄일 수 있었다.  

     

도로가 심플하게 잘 닦여있는 것과 자동차의 크루즈 기능이 아니었더라면 초행길 장거리 운전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들의 보조역할은 완벽했다. 조수석에 앉아 지도검색과 주의 사항들을 낱낱이 알려주었다. 여행 일정과 통역 그리고 가이드 역할까지 아들이 도맡아 해 주었다. 아빠가 해야 할 몫까지 혼자 하느라 여행 내내 부담이 컷을 것이다. 


보호를 받기만 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다 커서 이제 보호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길을 걸을 때도 나보다 훨씬 큰 아들은 나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차도 바깥으로 나를 인도한다. 아들에게 받는 기분 좋은 매너가 나의 심장을 살짝 쿵 흔든다. 아이를 낳아 기른 데 대한 가장 값진 보상이 아닐까 싶다.    

  

어느새 차와 도로와의 교감이 끝나고 운전이 한층 편해진 상태였다. 교통 경찰차가 내 뒤를 따라오며 서라는 신호인 줄도 모르고 2마일 정도를 달렸다. 추월차선에서 주행을 고집했다는 죄목으로 잡혔으나 아들의 예의 바른 응대로 잘 마무리되었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데는 미국에서 경찰한테도 잡혀봤다는 무용담과 맞바꾸면서 웃어넘겼다. 별 걸 다 해본다. 

     

다음 날 2시간을 더 달렸다. 같은 서부 지역이지만 Moses lake에서 느낀 메마르고 척박한 땅과는 대조적이다. 넓고 나즈막한 언덕들이 어깨를 겹치고 푸른색 견사 이불을 덮고 있었다. 동쪽으로 수백 마일을 달린 효과였다.      


맑은 개울과 따가운 햇살이 초원의 능선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목적지에 가까워짐을 체감할 수 있었다. 부푼 가슴을 진정시키며 Yellowstone National Park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차에게 말했다. “우리를 안전하게 여기까지 데려와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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