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추석이다. 도시에 있는 자식들은 차 밀릴 걱정과 번거로움을 호소한다. 오가는 길과 불편한 잠자리와 명절 음식준비로 분주할 일들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나도 그렇다. 명절 때마다 가장 부러운 사람이 자기 집에서 잠을 잘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부모님 댁이나 친척집을 방문하고도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잔다는 것은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뜻이고 차 밀릴 걱정 필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식들 입장이 이렇다면 멀리서 오는 자식을 맞이하는 부모님들은 어떨까. 명절을 쇨 부모님들 걱정의 대부분은 무엇일까? 정작 자신이 겪을 힘듦보다는 자식들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장만할지에 대한 고민이 한가득일 테다. 오랜만에 오는 자식에게 무얼 먹일지, 장거리 운전으로 오는 자식이 힘들지는 않을지, 잠자리가 불편하지는 않을지 온통 자식을 위한 준비들이다.
부모님에 비해 자식의 명절맞이는 다소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관심의 화살이 자신에게로 향해있는데 비해 부모님의 그것은 외부로 향해 있다.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부모봉양은 선택이고 자식 키우는 일은 의무라는 말이 이해가 가지만 이미 다 큰 자식에게도 해당사항이 있는 걸까.
연세 많은 어머니께서 시골장에서 장을 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골 5일장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근근이 연명되고 있다. 장에 나가려면 하루 두 번 있는 버스를 타야 한다. 장터에서 산 물건들을 들고 오는 일은 더 큰일이다. 홀몸으로 걷는 일도 어려운데 짐을 들고 오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 번의 명절을 보내기 위해 어머니는 시골장에 몇 번의 걸음을 해야 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분명한 건 여러 번이라는 사실과 힘겹게 들고 와야 한다는 사실뿐.
어머니의 다리 통증은 어느 날 고관절로 통보도 없이 이사를 한다. 아니 이사를 했다기보다 더 큰 통증에 의해 작은 통증이 묻히는 것이다. 이번에는 팔이 아프셔서 병원에서 통증완화 주사를 맞고 오셨다고 했다. 얼마 전에 분명 고관절이라고 하셨는데 이번 병원행의 주된 이유는 팔 때문이었다. 바싹 타 들어가는 고추밭에 물을 주고 나서 얻은 훈장인 듯하다. 줄이고 또 줄여서 이제는 더 이상 줄일 농사도 없다고 하지만 여전히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고춧가루만이라도 당신 손으로 깨끔하게 해주고 싶다고 하신다.
이 참에 어머니가 보던 장을 동서와 품목을 나누어 모조리 사서 가기로 했다. 몇 해 전부터 며느리들의 주장으로 전과 튀김을 사서 쓰게 되었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다. 하나하나 어머니 손을 거치던 제사상 음식들이 이제 조금씩 며느리들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마저도 어머니의 양보가 있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실은 그 양보가 어머니 노환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며느리들이 뭐라고 한들 어머니께서 할 여력이 있었다면 해오던 방식을 고수했을 것이다.
"도라지와 고사리 사갈게요. 어머니"
밭에서 캔 도라지가 있을 듯하여 여쭤보았다.
"도라지도 있고, 깨사리도 있다. 고매 쭐기는 밭에서 따서 까면 되고"
"생문어는 동서가 삶아놓은 거 사 오기로 했어요. 어머니"
"마른 문어 한 마리 사놨다. 그걸로 쓰면 안되것나?"
"조구랑 민어는 시골장께 크고 좋다. 도시는 이리 큰 게 없실기다."
"어머니, 저희가 준비하기로 했는데 어머니께서 벌써 이것저것 준비해 놓으셨네요?"
"파마하러 갔다가 사 왔다"
"돼지고기 수육은 신반장에서 사면 된께 그 먼 데서 사올라 하지 마래이. 콩나물도 여서..."
"내가 늙어서 너거덜한테 벌써 이래가 우짜것노?"
"어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누구라도 아프고 힘들면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되는 거죠. 어머니께서 괜한 상실감이나 허탈감 갖지 않으신다면 저희는 괜찮아요. 이제 어머니 그러실 연세도 됐는데, 괜한 자책 마셨으면 해요."
"나는 안 그럴끼다. 내가 늙어서 이제 너거들이 하자는 대로 할끼다."
어머니의 명절 제사 장보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실 수 있을 때까지, 하실 수 있을 만큼, 언제까지고 하시길 바랄 뿐이다. 그것이 곧 어머니 존재의 의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