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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카레 Oct 17. 2024

존재 자체가 의미

TV쇼 [스테이지 파이터]에서 발레리노들의 경연이 시작되었다. 딸이 꼭 봐야 할 프로그램이라며 1,2회를 본방사수하더니 바빠지면서 그마저도 챙겨보지 못하고 있다. 요즘이야 본방을 못 봐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기에 놓쳐도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발레리나를 꿈꾸는 딸은 발레리노들의 경연대회를 더욱 쫄깃하게 즐길 줄 안다. 같이 보면서 해 준 딸의 훈수가 나의 관전에 꽤나 도움을 주었다. 숨 막힐 정도의 연속동작과 가차 없는 탈락 시스템에 놓여있는 발레리노들이 안쓰러웠다. 딸의 처지를 경험해 왔기에 나 역시 간이 쪼그라드는 긴장감 갖고 시청했다. 누구든 떨어지지 않고 모두가 잘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지만 경연 프로그램이라 우열을 가리지 않을 수 없다. 참가자들은 기선제압하는 발언으로 먼저 자신감을 내보였다. 


"저는 피지컬, 기술력, 표현력 다 갖췄어요."

"마네쥬라면 저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요 "


라는 식으로 자신을 강하게 어필하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경합에서는 이기는 자가 있으면 패배하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경연프로그램의 가장 큰 무기는 긴장감이다. 긴장과 떨림이 무게를 가득 매우지만 참가자들의 당당한 모습에 경외감마저 든다. 나라면 저런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도전을 회피하고 말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다행인 건 이 모두가 과정이라는 데에 있다. 무대를 서보고 경합을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해 평가를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탈락에 대한 두려움과 창피함에 사로잡혔다면 출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등만을 알아주는 세상에 대해 보란 듯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아 더욱 보기 좋았다. 경연 프로그램에서야 모두가 일등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지만 분명하건, 일등만이 살아남는 건 아니다. 잘하고 좋은 조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자에게 더 큰 영예가 찾아온다. 신체에 결함을 가진 무용수가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과 같다. 또 한 가지, 하나의 무대를 만드는 데는 중요하지 않은 역은 없다. 주역만이 대단하고 인정받아 마땅한 것은 아니다. 작품이 탄생하는데 관여한 모든 이의 역할이 중요하다. 


딸이 얼마 전 무용수로 참가했던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자신을 '병풍'이라고 지칭했다. 중앙에서 솔리스트들이 무대를 누빌 때 뒤에서 군무를 하는 무용수들을 일컫는 일종의 비속어이다. 그러면서 재차 이르길 "엄마 내가 어디 있는지 찾기보다는 전체 무대를 감상해"라는 말을 거듭했다. [백조의 호수]는 군무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작품이다. 대서사시의 느낌을 줄 정도로 군무의 비중이 높다. 딸은 내심 관전포인트를 알려준답시고 한 말이지만 약간 위축된 모습을 감추진 못했다.   


딸이 발레를 하기 전에는 나도 무대중앙을 중점으로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비중이 가장 큰 역할을 맡은 인물 위주로 감상 했었다. 하지만 무용수의 엄마가 되고 보니 그런 시선은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작품을 이루는 모든 무용수들을 골고루 감상하며 모두의 노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분명 스포트라이트를 더 많이 받고 사람들의 환호를 많이 받는 배역이 있지만, 배경을 만들어주는 군무가 없다면 완성된 작품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중 있는 배역이 아니라고 해서 연습을 게을리하진 않는다. 연습의 땀방울은 누구의 것이든, 어느 자리에 있든 소중하다. 모든 존재는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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