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글리어스 Jul 06. 2022

예쁘지 않은 사과가 버려지면서 생기는 일

무작정 발로 뛰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만난 농가 이야기

자연스러운 색으로 물들었을 뿐인데

가을 제철 과일, 사과는 초록색으로 맺혔다가 햇볕을 듬뿍 쬐면서 자연스럽게 빨간색으로 물듭니다. 그리고 해를 덜 받는 아랫부분이나, 잎사귀와 나뭇가지에 가려진 열매에 초록색과 노란색이 남아있는 것도 빨갛게 물드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똑같은 나무에서, 똑같은 정성으로 자라났지만 노란기가 있는 사과와 새빨간 사과는 대우가 크게 달라져요. 가격 역시 최대 5배까지 차이가 납니다. 이렇다 보니, 많은 농가에서는 비대제*, 색택제**를 뿌리고, 반사필름, 봉투 등을 씌우며 사과를 빨갛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들여요. 즉 우리가 당연시하는 '빨간 사과'를 위해서 부가적인 노동력에 따른 인건비가 소요되고, 매년 막대한 양의 농업 쓰레기가 발생하게 됩니다.

*비대제 : 농산물의 크기를 키우는 약제

**색택제 : 농산물의 색과 윤기를 더 좋아 보이도록 만드는 약제


정말 '노란' 사과, '울긋불긋' 사과는 맛이 없을까요? 직접 농가에서 맛을 보았지만, 색깔과 크기가 어떻든 맛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어요. 과일이 충분히 익기를 기다려, 제 때에 수확한다면 그 모양이 어떻든 맛있을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지요.


지금도 농가에서는 '못난이', 'B급' 농산물을 판매하는 것을 주저하지만, 가을 풍경이 여러 가지 색으로 물들듯, 알록달록한 색을 간직하고 있는 사과를 더 많은 사람들이 반겨준다면 다양한 생김새를 한 사과도 시장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산과 들의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사과는 맛도, 향도, 더 자연스러울 테니까요!


용감한 사과의 훈장


봉지를 씌우지 않는 등, 최소한의 손길로 자연스럽게 키운 사과는 햇빛, 바람, 비, 서리 등에 노출되어 갖은 풍파를 겪습니다. 


▶  병충해의 침입을 받았다가 자연치료된 흔적이나, 나뭇가지에 긁혔다가 아문 자국이 더 많이 생깁니다.

▶  과피가 매끈하지 않고 쇠에 녹이 낀 것처럼 거칠어지는 '동녹 현상'도 더 많이 나타납니다.

▶  모양도 마냥 동그랗지 않고 울퉁불퉁해집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과정을 오롯이 견뎌냈기에 과육이 단단해져 식감도 아삭하고, 당도와 산미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아주 맛있는 사과가 됩니다. 껍질을 벗기거나, 상처 났던 부분만 살짝 깎아내면 다름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고, 일부 소비자는 더 맛이 있다며 이런 사과만 찾기도 해요.


시장에서 '못난이'로 취급받는 이런 상처들이 오히려 강한 환경을 꿋꿋하게 견뎌내고 더 맛있어졌다는 '훈장'입니다.


얼마나 많이 낭비될까?


동녹 현상, 가지에 찍히고 긁힌 상처, 병충해를 이긴 흔적, 크기가 작거나 크고, 모양이 울퉁불퉁 못생긴 사과들... 맛에 지장을 주지 않거나, 일부만 도려내면 되는 모든 사과들이 수확 단계에서 걸러집니다. 기준을 통과한 사과만이 시장에 진출하거나, 급식으로 납품될 수 있어요.


그렇다면, 남은 사과는 모두 어디로 갈까요?

즙 또는 가공식품으로 만들면 남김없이 활용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이 방법이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에요. 농장에서 자체 가공 시설을 갖추기에는 많은 비용과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에, 2차 가공을 위해서는 대부분 전문 설비를 갖춘 식품 공장에 보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가공 공장의 경우, 사과를 필요로 하는 시기와 물량이 한정되어 때마다 다르게 발생하는 못난이를 해결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죠.


그래서 힘들게 기른 사과들이 제 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발생하고, 가공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추가적인 비용과 플라스틱 포장재가 들어 또 다른 낭비로 이어져요. 때문에, 원물로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사과들은 과일 그대로 소비하는 것이 농가의 경제적 건강에도, 지구의 건강에도 가장 좋은 결과를 낳아요. 


맛이 똑같아도 예쁘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닿을 수 없는 지금의 선별 기준과 유통 구조로 인해, 가공이나 폐기가 가장 손쉬운 처리 방법이 됩니다. 결국 사과 한 알을 위해 들어가는 약 125L(500ml 생수 250병 분량)의 물, 땅, 자재까지 제 가치를 찾지 못하고 버려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물론 농가마다 상황이 제각각이고, 지금의 과일 선별 시스템이 자리한 배경도 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당장 많은 것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꾸준히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직접 맛 보여드리면서 생김새 때문에 버려지는 농산물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완전히 처음 접해보는 낯선 비주얼을 잘 받아들여 주실까 염려되는 한 편, 맛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꾸러미에 못난이 사과를 넣었을 때 많은 분들이 맛있다고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어글리어스를 통해 '당연하지 않은' 농산물들에 대한 관심이 생기셨다면,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 주세요!




---------

어글리어스 https://uglyus.co.kr/

월간 못난이 구독하기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25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