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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Jun 04. 2023

임대차등기명령에서 내 집 마련까지

2. 문제의 집 계약

2018년 12월 본사로 발령 나며 처음으로 수도권으로 올라왔다. 부산이 고향이지만 스무 살 이후로 지방 소도시에서 생활했고 소도시의 한적함과 주변의 자연조건에 만족하며 살았다. 지방의 작은 도시라 해도 꽤 큰 대형 쇼핑몰이 있었고, 온라인 쇼핑을 해도 다음날 택배가 도착하는 지역이라 큰 불편함이 없었다. 조금만 나가면 산과 바다를 만날 수 있는 도시라 복잡하고 바쁜 서울 생활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거를 위해 들여할 돈이 크지 않았다.


본사 근처에서 전세로 집을 구했다. 그때의 부동산 시장 상황은 집값이 오르던 시절이었고 상승세를 막기 위해 대출은 규제되던 시기였다. 전세로 들어간 아파트의 매매 가격은 3.5억이었고 1.2억으로 집을 구했다. 신축 조합아파트였고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라 살기에 좋았다. 주변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전세 보증금이 싼 편이었다. 집을 소개해줬던 공인중개사는 우리 아이가 어린것을 보고, 살면서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으라고 조언했다. 그때만 해도 '내 집 마련이 과연 가능할까?' 했다.


2019년. 이 집의 가격은 4억이 되었고 주변 전세 보증금은 2억으로 뛰어올랐다. 중개사의 말대로 적당한 신축을 분양받을 계획이었지만 분양가가 7-8억으로 뛰며 내 집 마련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낮은 금리로 인해 사람들은 저마다 영끌로 집을 마련했고 그 영끌을 막는 정부를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정부'로 비난했다. 건설사를 모체로 두거나 광고주로 둔 언론사들은 연일 그런 정부를 물고 뜯기에 바빴다.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이야기했고 부동산 관련 유투버들은 ‘집은 현재가 가장 싼 것’이라며 부동산 구매를 부추기기에 바빴다.


2020년. 임대차 계약기간 종료일이 다가왔다. 갱신권을 쓰면 같은 가격으로 2년 더 거주가 가능했고 그럴 의사가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해였고 길 건너 초등학교도 하나 있었다. 다만 부동산 시장의 상승세로 인해 매매가격은 5억 후반, 전세는 2억 4천으로 껑충 뛰었다. 들어온 가격의 두 배였다. 임대인은 임차인의 갱신권을 거부할 수 없었지만 예외가 있었다. 본인이 들어와서 산다고 하면 임대인은 더 이상 계약을 유지할 수 없다. 다행히 계약 종료일 이전 직접 들어와 살 계획이라는 의사를 밝혀주어 다음 집을 구할 시간은 충분했다. 자금의 여유가 있는 분이어서 다음집을 준비하기 위한 계약금도 미리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다음 집이었다.


아내와 나는 아이 학교를 가정 먼저 우선시했다. 초등학교 주변의 아파트를 찾아다녔고 지하에 주차장이 있는 곳을 물색했다. 새로 알아본 집은 하루 종일 해가 드는 2층이었다. 전면에 공원이 위치해 있어 뷰가 좋았고 아이들은 걸어서 통학이 가능했다. 신축 후 임차인이 거주하던 집이었는데 신혼부부였고 아이가 없어 인테리어가 단순하고 깔끔했다. 다만 전세보증금이 문제였다. 3.2억. 낮은 금리였지만 은행에서 일정 부분 빌렸을 때 한 달에 60-70만 원을 주거비로 써야 했다. 관리비까지 더하면 약 백만 원이었다. 집은 마음에 들었지만 매월 소득의 큰 부분이 지출로 나가는 부분을 감당해야 했다.


중개사에게 계약금을 걸었고 임대인과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집주인은 70대 할아버지였고 인근 도시에서 조경사업을 하던 분이었다. 임대인은 이 집을 3.5억에 구매했고 3.2억에 전세를 놓았다. 코로나는 기승이던 시절이었고 집값은 하늘 무서운 지 모르고 상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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