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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Dec 06. 2023

그런 친구 있으세요?

상처를 주는 친구


수업을 하던 중 아이가 문득 얘기를 꺼냈다.


"선생님, 오늘 우리 반에 두 명이 전학 갔어요."


말하는 얼굴이 못내 아쉬운 표정인 듯 했다.


"그래? 친했던 친구야? 두 명이나 전학 가서 아쉬웠겠다."

"좀 아쉬웠어요. 근데 한 명은 원래 저한테 짜증내던 친구에요."


의외의 대답이었다. 혹시 아이를 괴롭히던 친구였나 싶어서 좀 더 물어보았다.


"너한테 짜증을 냈어? 왜?"

"그 친구는 맨날 짜증내요. 저한테만 그런 건 아니고, 원래 다 짜증내요."


다행히 이 아이만 콕 찝어서 악의적으로 괴롭히던 친구는 아닌 듯 보였다.


"다 짜증낸다구?"

"네. 걔는 모든 아이들한테 맨날 짜증내요."

"저런. 성격이 별로인가보네. 친구들이 힘들었겠다. 그 친구는 이름이 뭐야?"

"이름이 규리에요. 근데 또 강민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강민이가 규리는 '썩은 귤이'라고 했어요."


나도 모르게 웃을 뻔 했지만, 참았다.

초등학교 저학년들도 이런 풍자를 하는구나.


"강민이라는 친구가 규리한테 당한 게 많았나보네.

그래도 친구한테 '썩은 귤'이라고 놀리는 것도 안 좋은 거야."

"아, 앞에서 그런 건 아니고, 규리 없을 때 저한테만 말한 거에요."

"그랬구나. 다른 사람이 없을 때 안 좋은 얘기하는 건 '뒷담화'라고 하는데. 웬만하면 다른 사람 욕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아이에게 '교과서스러운' 얘기를 해주면서도, 속으로는 전학을 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전학을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에게는 짜증내는 친구가 없는 편이 좋은 일일테니 말이다.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는 찰나, 아이가 불쑥 물어왔다.


"선생님도 그런 친구 있었어요?"


"응? 선생님?"

"네. 선생님 학교 다닐 때, 그런 친구 있었어요? 선생님도?"


나도 그런 친구가 있었던가?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한 사람이 있었다.

한 때는 나의 절친이었으나, 지금은 연락이 끊긴 한 친구가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그렇네. 선생님도 그런 친구 있었지."

"진짜요? 이름이 뭐에요?"

"이름은 기억이 안 나네. 근데 말해줘도 누군지 모르잖아~~"


그렇게 장난으로 아이와 둘이 웃으면서 대화를 마무리 짓고자 했다.




사실은, 기억이 난다.


그 친구 이름은 이조은이었다.


나는 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처음 타지에서 친구가 없었을 때, 한인교회에서 먼저 나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와준 친구가 조은이었다. 조은이를 통해서 다른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 차츰 적응해서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그 친구는 참 적극적이고 당돌한 구석이 있었다. 처음 본 나에게 다가와서 대뜸 '노래방에 가자'고 제안한 것부터 캐릭터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녀는 배려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건 다 해야 하고, 하고 싶은 말도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꽤나 직설적인 화법의 소유자였다. 가끔 여과없는 말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안절부절하게 할 때가 있었지만, 명랑하고 재미있는 친구이긴 했다.


문제는 내가 조은이가 다니는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면서부터였다. 학교에는 그녀와 가장 친한 민희라는 친구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민희와 내가 사는 동네가 가까워서 우리 둘은 함께 통학차를 타게 되었다. 자연스레 민희와 나는 점점 친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셋이서 함께 잘 다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조은이는 내게 유독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시도때도 없이 짜증이고, 무슨 말만 하면 핀잔을 주거나 쏘아붙이기 일쑤였다. 한 번은 본인 가방이 열려 있다며 나한테 가방을 잠궈달라고 등을 돌리길래 도와줬더니, 가방을 잠궈주자마자 쌩하고 가버린 적도 있었다. 그렇게 일부러 나를 무시하는 행동을 점점 더 자주했다.


그녀가 내게 비우호적인 건 민희도 알고 있었다. 나와 민희는 조은이가 우리 둘이 서로 더 친해지는 게 싫어서 훼방을 놓는 것 같다고 느꼈다. 아무래도 나한테 민희를 뺏겼다고 느끼는 것 같다는 데도 동의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까진 이르렀으나, 마땅한 해결책을 찾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예배가 끝난 후 영어학원 얘기가 나왔다. 조은이와 나는 같은 영어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지난 시간에 풀이가 애매했던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 생각엔 아무리 봐도 그 문제의 답이 틀린 것 같았다. 정답이 잘못 표시된 게 아닌지 선생님께 다시 한 번 여쭤봐야겠다고 말했다.


그 때였다. 조은이는 온 교회가 울릴 정도로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니가 뭘 알아! 내가 국제학교를 삼 년 다녔어!"


온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당혹스러워서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났지만, 대충 본인은 국제학교를 몇 년 다녔고, 나는 이제 막 다니기 시작했는데 영어를 뭘 안다고 설치냐는 말이었다.


나는 울어버렸다. 누가 내 면전에 대고 소리를 지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심지어 친한 친구가 나를 모욕하는 말을 하면서 고함을 치는 건 더더욱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조은이는 자기 할 말을 다 하고 훌쩍 가버렸다. 그때 나를 위로해주던 다른 친구가 그랬다.


"쟤는 원래 그런 애잖아."


다음 수업에서 영어 선생님은 그 문제의 정답이 틀렸다고 정정하셨다. 내 말이 맞았던 것이다. 그날 수업에서 조은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보지 못했다.


얼마 후 나는 조은이와 화해를 했다. 10대의 나는 그저 누구와도 불편한 관계로 머물고 싶지 않았다. 내가 누군가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뭔가 비정상적인 상태로 느껴졌고, 그 참을 수 없는 불편한 상태를 바로잡기 위해서 차라리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편을 선택했다. 비록 상대방이 잘못한 거라 할지라도.




시간이 흘러 20대 후반이 되고서야 나는 후회했다. 살다보니 세상에는 아무 이유없이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고, 내가 뭘 해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거였다. 조은이도 참아주지 말 걸 그랬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아니,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20대 후반의 어느 날, 엄마와 빨래를 개다가 우연히 옛날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내가 모르는 얘기를 하시는 거였다.


"내가 그때 한인 사회에서 별 일을 다 겪었잖아. 니 친구 엄마한테 전화도 다 받고."


알고 보니 조은이네 어머니가 우리집에 전화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내용인 즉슨, 우리 학교에 소위 말하는 '재벌집 딸래미'가 있었는데, 어떤 아이가 그 재벌집 딸에게 통학할 때 차를 같이 타고 싶다고 제안했다는 거였다. 물론 남의 집 기사 딸린 차를 학교 갈 때 같이 태워 달라고 말하는 패기가 당돌하긴 하지만, 당시 주재원 엄마들 사이에서는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파란을 몰고 온 사건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의 주인공이 '나'인 것으로 오해를 받은 거였다.


조은이네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가 전화를 받자 통성명만 마친 뒤 대뜸 말했다고 한다.


"어디서 감히 차를 같이 타자고 해요?"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모른 채 얼굴도 본 적 없는 아줌마에게 무례한 대우를 받은 우리 어머니는 자초지종을 들은 뒤 어이가 없었다고 하셨다. 엄마는 우리가 그런 적도 없고, 설령 그랬다고 해도 이럴 일이냐고 되물으셨다고 한다.


엄마는 내가 조은이랑 친구인 것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굳이 나한테 이 사건을 얘기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아니, 엄마! 왜 말을 안 했어! 나한테 얘기했어야지."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당시 조은이는 나에게 한창 짜증 부리고 최선을 다해 깔아내리고 있었는데, 뒤에서는 조은이네 엄마가 우리 엄마한테 무례하게 굴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조은이와 화해하고 어떻게든 원만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던 거였다.


그 뒤로 나는 다짐했다. 다시는 조은이를 보지 않겠다고.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 강민이라는 아이가 '규리'를 '썩은 귤이'라고 한 것처럼 나도 당시에 '이조은'이 아니라 '안조은'이라고 뒷담이라도 했다면 이렇게 후회하지 않았을까?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교과서스럽게 남 욕을 하지 않고, 친구와 다퉈도 화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살았더니 소위 '호구'가 된 것 같았다. 화병이 날 지경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친구 이야기를 하는 건 마음이 불편했다.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간혹 그 이름이 언급될 때가 있었지만, 소식을 들어도 "아, 그래? 요즘 나는 연락을 안 해서."라며 흘려 넘기곤 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최근에 조은이가 다시 내 인생에 나타났다. 그녀에게서 인스타 팔로우 요청이 온 것이다. 나는 당연히 친구 신청을 수락하지 않았다. 잊고 살던 불편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디서 감히' 친구 신청을? 다시는 그녀와 친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수업으로 돌아가기 전, 아이를 앞에 두고 내 마음의 소리를 내놓았다.


"어딜가나 짜증이 많은 사람들이 있나보다. 왜 그렇게 짜증을 내는 걸까, 그치."

"그러게 말이에요, 참. 그냥 원래 성격이 그런 친구에요."


오래 전 위로 받으며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걔는 원래 그런 애잖아.'


"그냥 그런 친구야?"

"네. 뭐, 어쩔 수 없어요. 그냥 원래 그런 애에요."


아이는 나에게 누가 짜증을 내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지 않았다. 그 친구 때문에 엄청 속상했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본인의 답을 이미 찾은 듯 했다. 그냥 원래 짜증을 내는 친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집에 와서 생각을 해보았다. 그것보다 더 나은 해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짜증을 내는 친구에게 똑같이 맞받아칠 수도, 짜증을 내는 걸 괜찮은 척 받아줄 수도, 짜증 내는 성질을 고쳐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이니,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무례하게 굴 때, 그 상황에 매몰되면 필요 이상의 모욕감을 받게 된다. 상대방이 던진 감정의 쓰레기에 고스란히 피해를 입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원래 그렇다고, '그 사람'만 보게 되면 부정적인 감정을 발산하는 상대방을 좀 더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된다. 그 사람의 무례함으로 인해 영향을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조은이가 원래 그런 사람이어서 그런 거다. 어쩌면 그녀의 입장에서는 나의 존재가 대항해야 할 위협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


그녀가 상처될 만한 말을 한대도, 그건 그녀의 말 버릇이지, 내가 상처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녀가 나의 능력을 무시한다고 해도, 그건 그녀의 착각이지, 내가 더 실력이 좋았던 것이 팩트였다.

그녀가 내게 함부로 한다고 해도, 그건 그녀의 성격 탓이지, 내가 함부로 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때 내게 무례했던 친구에 대한 기억으로 더는 괴롭고 싶지 않았다.


별로 좋아하지 않던 동급생이 전학 가도 아쉬운 표정을 짓던 아이처럼, 맨날 짜증만 내는 친구라도 '친구'라고 부르던 아이처럼,


나도 그녀의 인스타 친구 신청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조은이가 자기 성격대로 굴더라도 속으로 '그래, 너는 원래 '안조은'이니까.'라고 생각하며 혼자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이 된다면,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오늘 잠들기 전 기도에서는 그녀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사하소서.”






*등장인물 이름은 가명으로 대치되었습니다. 에피소드는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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