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봄 Feb 20. 2024

안전한 교실

교실의 목표가 작아졌다.

이제 공무상 재해로 유치원을 떠나 쉬게 된 지

벌써 햇수로 3년 차가 다 되어간다.

솔직히 처음으로 휴직 서류를 낼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쉴 줄도, 오래 안 나을 줄도 몰랐다.

처음엔 출근하지 않는 게 실감 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내가 유치원에 있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그대로 남아있고, 유치원이 무섭다.




내 우울증과 트라우마는 여전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서는 이번 학년도에는 복직을 도전해

보자고 말씀하셨다.

더 이상 내 병은 깨끗하게 사라지기는 어려우니,

만성질환자처럼 약을 먹으며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요즘은 조금씩 유치원이 나의 일상이 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천천히 시작했다.


물론 당장 다가오는 3월에 복직을 하는 건 아니다.

올해는 ‘마음과 몸의 준비를 하는 해’로 보내자는

우리만의 치료목표이자 성장목표다.




고작 3년 사이에 교직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내가 처음 휴직을 할 때만 해도 교사들의 정신적

고통은 ‘참아야 마땅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들 교직에 잘 적응하며 지내는데,

나만 유별나게 까탈스러운 부적응자인 줄 알았다.

심지어 나는 교실이 무서운 경우도 아니었다.

오히려 교무실이 무서운 것에 훨씬 가까웠다.


요즘의 학교는, 내가 돌아가야 할 유치원은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면 다행인’ 공간이 된

느낌이다.

물론 예전에도 무사하면 그걸로 완벽한 하루였긴

했지만 ‘무사함’의 무게가 퍽이나 다르다.

3년 전의 교직에서는 무사한 하루를 보냈다면

편안한 숨을 내쉬었지만,

요즘의 교사들은 아무 일 없는 하루를 보낸 뒤

마치 ‘겨우 생존했다.’며 무거운 숨을 내쉬는 느낌.


이젠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 일 없이 안전한 하루를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다.



유치원에서 내게 가장 고된 시간은 교무실이었다.

갑질, 교육활동 침해행위, 과다업무에 해당하는

모든 부당함이 살아 숨 쉬었고 참다가 또 참다가

어느 날부터는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참고받아내다가는 내가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교무실에서는 매일 증거를 모아두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늘 내가 교무실에서 겪은 일이 어떤 규정에 따라

부당한 것인지. 어떤 부분이 내 교육활동에 지장을

주는지 증빙자료를 착착 모아두고 퇴근했다.

참 지옥 같은 교무실이었다.

3년을 쉬었고 사람도 바뀌었고 분위기도 다르지만

여전히 그 교무실에 앉아있을 자신이 없다.




지옥 같은 생활이었고 학기 중에 당장 병가를

쓸 수 있을 정도의 의료기록이 나오는 상태였지만

교실이 참 좋았다.

잘 맞는 아이들을 만났고, 신뢰해 주시는 부모님이

계셨다. 물론 모든 이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불편해

하시던 분은 극소수였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불편함은 힘들지만 이겨냈다.




내가 유치원에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가야 하는

이유는 마무리를 잘하고 나오기 위함이다.

내 인식 속에서 ‘유치원=생명을 위협하는 공포’로

자리 잡았는데, 그 트라우마를 조금이라도 흐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일에 손을 놓기 위함이다.

모든 종류의 힘든 감정과 인식들이 ‘유치원’으로

귀결되는 현재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싶다.


직면해서 깨지 않은 트라우마는 아무리 눌러두어도

틈이 생기면 다시 비집고 올라온다.

이 유치원 트라우마를 언젠가는 직면해 내 인생에서

사라지게 하고 싶다.

이젠 질려서 힘들어할 힘도 없달까.


준비를 단단히 하고 마무리를 하러 돌아가려는데,

또 규정이 발목을 잡는다.

이번에는 가진 걸 더 많이 포기해서라도 직면해야지

그리고 안전한 교실을 만들고 싶다.

거창한 학급운영은 바라지도 않고 그저 안전한 교실




아이들은 서로에게 존중받는 안전함
교사에겐 신변의 안전함
학부모에겐 믿을 수 있는 안전함

나는 이 정도의 안전한 교실을 바라지만,

고작 이 정도의 안전한 교실이 되려면 온 종류의

운이 다 따라줘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내 목표는 작아졌지만, 결코 작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희연 서울특별시교육감님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