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도 안돼, 휴직도 안돼
그래서 저보고 어쩌라고요?
이 말이 머리에서 맴돈 순간,
더 떨어질 것도 없을 줄 알았던 미련이 싹 사라졌다.
그저 꼴 보기 싫을 뿐.
아! 이런 게 환멸이구나.
공무상 요양 기간연장이 불승인되었다.
여전히 열 알이 조금 안 되는 약을 먹고,
하루는 증상을 참고 또 어느 날은 부작용을 참는다.
교직이 준 병을 국가는 끝까지 책임지지 않았다.
이제 공무상 재해를 이유로 휴직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선택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일반 병휴직을 사용할지, 아니면 복직할지
그런데 사실 둘 다 할 수 없었다
일반 병휴직? 지금까지의 공무상 요양이 병휴직 기간에 포함되어 두 달도 남지 않았다
복직은 ‘완치’ 또는 ‘정상 근무 가능한’ 문구가
들어간 진단서를 받을 수 없어 불가.
결론은 휴직은 해봤자 두 달,
휴직이 끝나도 복직은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란 거지?
휴직도 못하고 복직도 못하면 나는 대체
어떤 존재지?
이제는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 짓는 내가 대견하고 안쓰러웠다.
얼마나 그간 마음이 다 타들어갔으면 이제는 눈물도
흘릴 줄 모르는지 안쓰러웠다.
어쩜 병 주고 약 주기는커녕, 병 주고 버림받았는데
태연하게 피식 웃고 마는지 대견했다.
예전엔 살기 싫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는데
이제는 그렇다고 죽고 싶지는 않다.
나 죽이기도 귀찮고, 내가 아까우니까.
이깟 거지 같은 어른들이 삼십대 청년을 벼랑으로
내밀고 모른 체하는 상황은 이제 익숙하니까.
이런 것도 성장이라면 성장일까?
굳이 이렇게 고된 시간을 거쳐 성장해야 하는 걸까?
물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고 투쟁을 할 수도 있다.
행동한다고 무조건 구제받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지금까지의 나는 결과와 상관없이 내가 할 수 있는
투쟁을 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
이깟 교직 쥐고 매일 쏟아지는 이슈와 투쟁을 견뎌
내 자리를 지키고 싶지 않다.
자리를 지키는 것이 정말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왠지 내려놓으면 가벼울 것 같기도 하고!
과거의 나와 지금의 누군가에게는 꿈의 교직이지만
갈기갈기 찢긴 나에게는 이깟 교직이 되어버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를 못 들어와서 안달인 줄 아니?
네가 힘들게 임용공부한 시간들이 아깝지 않니?
막상 그만 두면 이만한 직장 없을 걸.
나도 알고 있는 것들을 누군가는 걱정하는 척으로,
누군가는 애정을 담아 조언해 주었다.
내가 정말 힘들게 들어온 자리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립유치원 교사를 희망하지만, 유아교육 전공해서
이만한 직장을 얻기 힘든 것도 어느 정도는 맞지만
잘 모르겠다.
무엇이 나를 위한 선택인지
아니
근데
진짜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