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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일 Mar 30. 2024

미혹

역사 이야기

망탁조의(莽卓操懿)라는 중국 고어가 있습니다. 왕망, 동탁, 조조, 사마의의 이름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나고, 자라고, 녹을 받던 나라를 망하게 하거나 찬탈한 역적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탁조의’는 후한 말에서 삼국시대로 이어지는 동시대를 산 사람들입니다. 지금의 관점에서는 역적과 영웅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이들보다 두 세기 전인 기원전 45년, 한나라에 왕망이 태어납니다. 왕망의 고모가 황후가 되자 왕망의 백부들이 제후에 올라 외척을 형성합니다. 부친과 형이 일찍 죽은 왕망은 가문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불우한 성장기를 보냅니다. 그러나 학문에 정진하며 정성을 다해 주변 사람을 섬겨 점차 인정받게 됩니다. 어머니와 형수를 정성껏 부양하고 조카를 양자로 삼아 친자식처럼 양육합니다. 대장군인 백부와 황후인 고모의 인정을 받아 순조롭게 공직을 시작합니다. 지혜롭고 겸손했던 왕망은 등용되자 두각을 나타냅니다.

    

서른을 넘기면서 후에 봉해졌고 38세에 대사마가 됩니다. 평제를 제위에 올리고 딸을 황후로 보내 외척으로서 실권을 장악합니다. 이때 둘째 아들 왕획이 집안의 노비를 죽입니다. 국법으로 처벌해야 하지만 왕망의 아들이라 아무도 문제 삼지 못합니다. 그러나 왕망은 아들을 문책해 자살하게 합니다. 사재를 풀어 백성을 구제하자 왕망에 대한 백성들의 평판이 주나라 주공 단과 견줄 정도로 치솟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입니다. 위선의 가면을 벗고 평제를 살해한 뒤 두 살짜리 영을 황제로 세우고 스스로 가황제가 됩니다. 기원후 8년, 선양의 형식으로 한나라 제위를 찬탈한 왕망은 신나라를 세워 황제의 자리에 오릅니다.   

   

8년, 황제가 된 왕망은 현실성이 없는 정책을 펼쳐 단기간에 국가 경제를 파탄으로 이끌고 백성들을 곤궁하게 만듭니다. 고구려왕의 칭호를 하구려후(下句麗侯)로 불러 고구려와의 갈등을 빗고 이민족과의 관계를 악화시킵니다. 제위 10년이 지나자 농민반란이 시작되고 5에는 경시제가 수도인 장안에 입성합니다. 왕망은 혼란 중에 살해당합니다.     


대선을 앞두고 나라 곳간을 열어 민심을 얻으려는 공약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당선을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 기세입니다. 단 한 순간도 이타적인 삶을 살지 않던 후보가 어느 날 천사가 될 순 없습니다. 삶의 이력에 진실이 있습니다. 말은 바꿀 수 있어도 걸어 온 길을 바꿀 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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