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
‘자살 사별자(Suicide Bereaved)’란 용어가 있네요. 심리적으로 가깝던 지인을 자살로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랍니다. 자살로 인한 상실의 아픔은 가족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교감해 온 지인에게도 쉬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남깁니다. 죽음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빠지기도 하고 종종 원망하는 마음으로도 이어져 심한 트라우마를 겪게 합니다.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것도 천명이라 할 수 있겠지만, 병사나 사고사와는 다른 의미로 남는 것 같습니다.
5년 전, 일요일 아침 35년 지기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장례부터 안장 그리고 천도재까지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성년이 되면서 서로 사는 게 바빠 일 년에 몇 차례 술자리 하는 게 전부였던지라 상실 자체가 안타깝기는 해도 큰 상처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가끔 생각날 때마다 살아 술 한잔하며 나이 들어가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이지요.
몇 달 전, 8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을 함께했던 한 분이 계십니다. 직원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책이 결국 또 다른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트라우마의 크기는 인연의 길이가 아니라 깊이 그리고 죽음과의 연관성에 있는 것 같습니다. 20여 일을 곁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자책, 어쩌면 그분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그리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무겁게 남아 있습니다. 그 가능성에 대해 왜 한 번도 예견하지 못했는지 제 미련함이 원망이 되고 상처가 됩니다. 그 또한 그분의 선택이었으니 이젠 잊자고 해도 의지와는 달리 벗어나지 못하네요.
인생 마지막 직장에서 늦은 나이에 많은 걸 배웁니다.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 인간의 후안무치, 선악의 불확실성, 반성하지 않는 가소로운 권력의 폭주...
HOC QUOQUE TRANSIB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