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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일 Jul 08. 2024

두 남자 이야기- 자객 예양과 협객 형가

역사 이야기

 누군가를 위해 다른 누군가의 가슴에 칼을 꽂는 사람을 자객이라 합니다. 대게는 지근거리에서 암살이 이루어지니 자객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극한직업입니다. 역사상 수많은 자객이 있었지만, 긴 세월 건너 협객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자객이 있습니다.     

기원전 5C를 범상치 않게 살다 간 한 사내가 있습니다. 가신(家臣)으로 역사에 흔적을 남긴 사내, 다소 우스꽝스러운 복수극을 연출한 사내,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라는 문장을 세상에 전한 예양이란 사내입니다.     

춘추시대 강력한 패권국이었던 진(晉)나라는 후반기에 이르러 한, 위, 조, 지, 중행, 범씨의 여섯 가문에 권력이 분산되고 이들은 서로 협력하거나 반목하면서 그들의 세력을 확장합니다. 신하가 군주를 핍박하는 반역의 시대, 지씨가 한과 위를 끌어들여 조씨의 마지막 숨통을 끊으려는 순간, 한과 위의 배신으로 오히려 지씨가 몰락합니다. 지씨의 몰락과 함께 진나라는 한, 위, 조로 삼분됩니다.     

예양은 세력이 가장 컸던 지씨의 가신입니다. 종주인 지요는 능력이 뛰어났으나 욕심 많고 인덕이 부족합니다. 지요가 조씨의 수장인 조무휼에게 무례하게 행동해 두 가문은 원한이 깊습니다. 조무휼은 지요의 두개골로 요강을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지요에게 당한 한풀이를 합니다. 살아남은 예양이 조무휼을 죽여 지요의 복수를 하려 합니다.     

자객 예양이 조무휼의 집에 잠입했다 사로잡힙니다. 조무휼이 예양의 충의를 칭송하며 승자의 여유를 보입니다. 조무휼의 명성만 높이게 된 예양이 절치부심합니다. 산 가족을 위해 죽은 지요를 잊어 달라는 아내의 간절한 바람을 뒤로하고 조무휼을 죽이기 위해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기행을 시작합니다. 나환자처럼 보이기 위해 온몸에 옻칠하고, 목소리를 바꾸려고 숯을 먹습니다(칠신탄탄, 漆身呑炭). 자학이란 표현이 더 적절한 예양의 고행이 죽은 지요를 위한 것이든 산 자신을 위한 것이든, 조무휼의 죽음이 목적이든 자학 자체가 목적이든 복수를 위한 두 번째 시도가 이어집니다.     

조무휼이 지나갈 다리 아래 숨어있다가 또다시 붙잡히는 신세가 됩니다. 조무휼이 묻습니다. “너는 범씨를 섬기다 범씨가 지씨에게 망할 때 스스로 지씨의 가신이 되었다. 옛 주인 범씨를 멸한 지씨는 섬겼으면서 왜 유독 지씨의 원수는 갚으려 하는가?” 예양이 답합니다.     

“범씨는 나를 평범하게 대했소. 범씨에 대한 의무도 평범할 수밖에 없소. 그러나 지씨는 나를 각별하게 대했소. 지씨에 대한 의무도 각별할 수밖에. 어찌 범씨와 지씨가 같을 수 있겠소.”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사기의 예양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조무휼이 칼을 던지자 예양은 죽어 지씨를 섬기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몸에 그 칼을 꽂습니다. 예양의 주검에 번지는 핏자국과 함께 춘추시대라는 3백여 년의 기나긴 여정이 막을 내립니다.     

기원전 3C를 살다 간 또 한 사내가 있습니다. 연나라의 비수가 돼 훗날 진시황이 될 진(秦)왕 정을 암살하려 했던 협객 형가입니다. 전국시대 칠웅의 각축이 진나라의 통일로 귀결되려 하자, 연나라는 진왕을 암살해 역사의 흐름을 바꾸려 합니다.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는 차구나. 사내 한 번 떠나면 돌아오지 못하리.”     

진나라 출신 장수로 연나라로 망명한 번어기가 스스로 내놓은 머리를 들고 진나라로 향하던 형가가 역수에서 불렀다는 ‘역수가’의 앞부분입니다. 암살의 성패와는 관계없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입니다. 결국 실패한 협객 형가의 피와 함께 2백여 년의 전국시대도 역사가 됩니다.     

그로부터 이천이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배신의 시절을 살고 있습니다. 시비의 기준은 이해가 되었고, 정치의 선악은 결과로만 판단하는 세태가 되었습니다. 치킨게임이 된 정치, 지지하고 싶은 정치인의 소멸, 극단적 정치팬덤. 정치가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이라는 오랜 믿음을 어찌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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