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세일 Jul 01. 2024

자살 사별자

사람 이야기

‘자살 사별자(Suicide Bereaved)’란 용어가 있네요. 심리적으로 가깝던 지인을 자살로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랍니다. 자살로 인한 상실의 아픔은 가족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교감해 온 지인에게도 쉬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남깁니다. 죽음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빠지기도 하고 종종 원망하는 마음으로도 이어져 심한 트라우마를 겪게 합니다.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것도 천명이라 할 수 있겠지만, 병사나 사고사와는 다른 의미로 남는 것 같습니다.     


5년 전, 일요일 아침 35년 지기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장례부터 안장 그리고 천도재까지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성년이 되면서 서로 사는 게 바빠 일 년에 몇 차례 술자리 하는 게 전부였던지라 상실 자체가 안타깝기는 해도 큰 상처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가끔 생각날 때마다 살아 술 한잔하며 나이 들어가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이지요.     


몇 달 전, 8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을 함께했던 한 분이 계십니다. 직원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책이 결국 또 다른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트라우마의 크기는 인연의 길이가 아니라 깊이 그리고 죽음과의 연관성에 있는 것 같습니다. 20여 일을 곁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자책, 어쩌면 그분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그리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무겁게 남아 있습니다. 그 가능성에 대해 왜 한 번도 예견하지 못했는지 제 미련함이 원망이 되고 상처가 됩니다. 그 또한 그분의 선택이었으니 이젠 잊자고 해도 의지와는 달리 벗어나지 못하네요.     


인생 마지막 직장에서 늦은 나이에 많은 걸 배웁니다.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 인간의 후안무치, 선악의 불확실성, 반성하지 않는 가소로운 권력의 폭주...     


HOC QUOQUE TRANSIBIT!


작가의 이전글 남색(男色) 풍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