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오늘] 판교책방 글쓰기 모임 세 번째 날
오늘의 글: <명랑한 은둔자>
여름은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여름은 나를 슬프게 만든다. 나는 역겨운 인간이다.
봄은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봄은 나를 슬프게 만든다. 나는 외로운 인간이다.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는 말이 있다. 대학교에 다니는 4년 내내 정말 뼈저리게 느꼈다. 중간고사는 봄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통째로 빼앗아갔다. 중간고사 기간의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집에 갈 때, 캠퍼스의 벚꽃은 거의 져버렸다. 붉은 꽃대만 남긴 벚나무는 언제 그렇게 화려한 꽃이 피었냐는 것처럼 우리를 모른 척 했다. TV에서는 꽃놀이를 가는 사람들을 그렇게도 열심히 보여주던데, 나는 언제 저런 걸 즐길 수 있을까.
중간고사라는 것에서 벗어날 때가 되어 나도 꽃놀이를 가는 사람에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벚꽃은 여전히 나를 소외시켰다. 왜 다들 꽃놀이는 혼자 가지 않는 거지? 왜 여러 사람이, 아니면 절대 다수로 커플이 벚나무 아래를 차지하고 웃으면서 사진을 찍어주는 거지? 나는 사무실 창가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아서 캔커피를 마시면서 그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불면 벚꽃잎이 힘없이 바람결에 흔들리다 둥실둥실 사르르 흩어져버린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벚나무 아래에 있는 사람들과 달리 외로움을 느꼈다. 다들 저렇게 즐거워 보이는데,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그 생각은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슬프게 만들었다. 외롭게 만들었다. 나는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 아니었다. 원체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고, 나가서 사람을 만나느니 방구석에서 뒹굴면서 혼자 무엇이듯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니 벚꽃을 탓할 수도 없다. 내가 흐드러지게 꽃이 핀 벚나무를 보면서 청승맞게 한숨을 쉬어도 그건 내가 스스로 만든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나는 시간이 지나 벚꽃도 혼자 잘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인파에 섞여 혼자 이어폰을 끼고 돌아다니면서 벚꽃 사진을 찍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벚꽃이 필 때가 되면, 벚꽃이 필 정도로 기온이 따스해지면 반사적으로 외로움의 감정을 느낀다. 잘 일하다가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커피를 들고 벚나무 밑을 걸어갈 때에도, 혼자 벚꽃을 신나게 즐기고 있어도 묘하게 벚꽃을 보면 어떤 외로움의 찌꺼기같은 것이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이제 그런 생각이 든다. 외로운 게 아니라,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어쩔 줄 모르는 그런 감정이 아니라, 내가 잊고 있던, 인간이 다들 가지고 있다는 외로움이라는 것, 그것을 벚꽃이 기억하게 해 주는 게 아닐까. 너도 한 때는 그랬어. 인간은 다들 외로움을 갖고 있어. 네가 그 감정을 모르는 게 아니고 네가 갖고 있지 못한 게 아니야.
다만 넌 지금 그 외로움을 잘 해소하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라고. 나와 같이. 벚꽃이랑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