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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감 Jul 28. 2022

반지하

판교책방 글쓰기 모임 아홉 번째 날

오늘의 글: <기억 꿈 사상>

나의 기억은 두세 살 적부터 시작된다. 나는 목사관, 정원, 세탁장, 교회, 성곽, 라인폭포, 뵈르트의 작은 성, 그리고 교회 관리인의 농가 등을 회상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호한 바다에 따다니는 기억의 섬들일 뿐이다. 그것들은 서로 이어져 있지 않은 듯이 보인다.

몇 가지 기억들. 집으로 올라가는 좁은 골목길, 벽돌로 지어진 다세대 주택과 단독 주택들, 그 위를 어지럽게 가로지르는 검은 전선들. 길은 아이들이 뛰어다니거나, 아스팔트를 깨고 공사를 하는 모습만이 기억난다. 그 골목길 윗쪽에 우리 가족이 이사 온 주택이 있었다. 큰 철문이 아니라, 그 옆으로 나 있는 작은 철문으로 들어가면 우리 가족이 사는 반지하집으로 내려가는 시멘트 계단이 나타난다. 그 계단으로 내려가면, 쓰고 난 연탄재가 쌓여있는 문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신발 몇 개 놓으면 꽉 차는 작은 현관이 있었고, 현관 옆에는 바로 부엌이 있었다. 어두컴컴한 부엌 옆으로는 하나뿐인, 제법 큰 안방이 있다. 방은 길 쪽으로 창이 나 있기 때문에, 집에서 가장, 아마 유일하게 밝았다. 그 방에는 침대와 TV가 있었고, 내가 쓰는 장난감과 책들을 한 쪽에 모아놓았다. 

이 기억들은 하나하나의 조각이다. 어떤 기억은 사실과 틀릴 것이고, 어떤 기억은 다른 시기 다른 장소의 기억이 와서 들러붙은 것이다. 이 이어져 있지 않으나 이어진 하나의 기억이 나의 유년시절의 일부이다.


반지하는 처절하고 비참한 빈민층의 이미지 그 자체로 인식되어 있고, 사실 반지하에 산다는 것은 그렇다. 그 습기와 묘한 냄새, 창문을 열면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발과 매연, 빛이 들어오지 않는 부엌, 연탄가스. 그나마 나는 반지하에서 여름에는 살지 않았기 때문에 장마철 침수는 겪지 않았다. 그것은 말로만 들었고, 대신 자면서 비가 쏟아져 집이 물에 잠겨 고생하는 꿈을 꾸었다.

그런 반지하였지만 그 곳에 살 때 내 기억은 나쁘지 않았다. 나는 곧 유치원을 졸업하고 학교에 갈 생각에 조금 설레기도 했고, 아스팔트를 깨는 소리에도 익숙했고, 연탄을 가는 것을 재미있게 생각했다. 집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 있었다. 나는 몇 개 있는 장난감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지하의 그 모든 단점들을 알기에는 나라는 아이는 너무 어렸다. 그리고 아버지와 엄마는 그 어린 아이에게 반지하에 사는, 지방에서 서울에 막 올라온 가난한 집 아이라는 딱지가 붙지 않게 하려고 부던히도 노력했던 것 같다. 햇빛이 잘 들지 않지만 열심히 세탁한 옷을 잘 말려서 입히고, 깨끗한 신발을 신기고, 머리를 빗겨 아스팔트 깨는 공사가 한창인 밖에 내보내곤 했다. 반지하 집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도 당연히 아버지와 엄마였다. 부엌은 어두웠지만 나는 그 어두운 부엌에서 밥을 먹지 않았다. 밥은 집에서 가장 밝은 방에서 먹었기 때문이다.

반지하의 유년시절은 나를 처절하고 비참하게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엄마의 노력으로 내 유년시절은 평탄하게 기억되었다. 나는 이제서야 생각한다. 아버지와 엄마가 생각하는 반지하의 그 시기는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낯선 서울로 처음 올라와 얻을 수 있는 집이 어두컴컴한 반지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지를. 추위 속에서 연탄을 때면서, 햇빛이 들지 않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면서, 매연이 들어와도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면서, 마르지 않는 빨래를 말리면서, 윗층에 사는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를. 그리고 그렇게 수십년이 흘러 이제 번듯한 내 집을 가지고 계신 아버지와 엄마가 그 때를 회상할 때 어떤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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