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같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올해도 다시 고3 담임을 맡게 됐다. 이번에 올라오는 학생들은 2년 전 처음 담임을 맡았던 07년생 아이들이다. 황금돼지띠 복스러운 기운을 가진 아이들이라 여느 때보다 머릿수도 많다. 3학년이 되더니 제법 선배 티가 나는 것이 듬직하기도 하거니와 한편으로는 미숙할 때 만났던 아이들을 또 맡는 것이 지레 걱정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녀석들의 담임을 맡은 해에 출제 오류를 내서 시험 끝난 아이들의 속을 태우기도 했고, 생기부를 잘못 써주어 이듬해 아이가 5층 교무실까지 찾아오는 일도 있었다. 이제 학교를 2년이나 다녔으니 혹 지난 담임이 범했던 지도상의 과오를 더 찾아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반가움과 걱정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교실 문을 열고 아이들과 다시 만났다.
학기 초에는 대략적인 학업성적과 학생들의 성향 파악을 위해 빠르게 상담을 잡는다. 상담이래야 고3 학생들이라 나누는 주제는 으레 입시와 공부 이야기지만, 지나치게 굳어있거나 낯을 가리는 아이들이 있으면 MBTI라던가 이성교제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긴장을 풀어주기도 한다. 보통 아직은 라포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약간의 어색함을 감내해야할 수도 있다. 상담이 절반 넘게 진행되었을 무렵 한 아이의 차례가 왔다. 말문을 열어주려 애써야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이 아이는 선뜻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과 취미, 형제들에 대해 조잘조잘 이야기한다. 한눈에도 구김살이 전혀 없고 명랑해 보이는 그 아이는, 가장 마지막 [선생님께 하고싶은 이야기]라는 빈칸에도 거의 유일하게 내용을 채워왔다.
대학생 시절 먼저 교직에 나아간 선배들이 학생들과 단란하게 지내는 모습들을 멀리서 지켜볼 땐 나도 별다른 노력 없이 아이들에게 친숙한 선생님이 될 수 있을 줄만 알았다. 꼭 그 선배들처럼 재미있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그려보며 나 또한 교단에 섰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에게 학교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하루 종일 수업을 준비하고 밀려오는 행정 업무들을 간신히 쳐내다 집에 오면 이른 저녁부터 녹초가 되어 쓰러지기 일쑤였고, 아이들에게 집중할 시간과 에너지는 좀처럼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 상황은 작년까지도 마찬가지였다. 2년 차가 되었지만 가르치는 학년이 달라져 수업자료를 새로 만들어야 했고, 입시지도에 대해 이것저것 공부하느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이벤트를 위해 수고할 여유 따위는 생기지 않았다. 매월 (아주 어색하고 조촐한) 생일파티를 했던 것만으로도 첫 해보다는 나았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아이들과의 서투른 관계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예의며 교칙이며 그들이 지켜야 할 것들은 귀가 따갑도록 강조했으니 아마 아이들에게 나는 무척 고루하고 따분한 선생님이 아니었을지. 누구처럼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기란 나에게는 평생 해내기 힘든 숙제인가 싶었다.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어주세요!]
"이건 나는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이미 충분하세요!!"
한 줄짜리 귀엽고 짤막한 요구에도 내 입에선 자신 없는 속내가 튀어나온다. 아이는 개의치 않고 되려 너무나 살가운 대답을 한다. 담임으로 만난 지 몇 주 되지도 않은 마당에 나를 잘 알고서 하는 말은 아니겠지만서도, 왠지 실망시키기 힘든 아이의 말이다. 노력해 볼게, 라며 나지막이 마무리했지만 아이가 내비친 기대는 계속해서 머리에 남는다. 그날 아이와 나눈 이야기와 담임으로서 지나온 시간들을 조용히 곱씹어보며, 그동안 내가 아이들에게 좀처럼 다가가지 못했던 이유에 대한 답을 구했다. 그리고 또다시 이어지는 생각의 흐름 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수업자료도 업무능력도 어느 정도 갖추어진 나에게는 이제 아이들에게 쏟을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금요일 오후는 내리 창체 수업이다. 이 시간에는 보통 학교폭력예방이라던가, 학생인권 등등 필요하지만 아주 지루한 교육들이 이어진다. 실상 3학년에게는 더욱 지루한 3시간짜리 자습시간이기도 하다. 더구나 오전에도 한두 시간 자습을 한 날이면 아이들의 집중력은 이미 박살이 나있다.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 예전이었다면 공부에 집중하는 아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나머지 아이들을 조용히 앉히려고 했겠지만, 이 날만은 반짝 좋은 생각이 났다.
"우리 밖에 나갈까?"
갑작스런 담임의 한 마디에 아이들은 고개를 번쩍 들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오늘은 나가서 공부할 친구들은 벤치에서 공부하고, 걷고 싶은 친구는 주변 산책도 하고, 마지막에 모여서 사진도 한 장 찍고 거기서 종례하자!"
학교 건물 뒤편 구석에 큰 거울과 벤치가 여러 개 놓여있는 그늘진 공간이 있다. 남학생들은 볕으로 나와 공을 튕기며 놀고 있고, 여학생들은 릴스를 찍는지 핸드폰을 기둥에 세워두고는 신이 났다. 또 한켠에서는 문제집을 챙겨 나온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습을 하고 있다. 단지 교실 밖으로만 나왔을 뿐인데 수업시간에는 보지 못했던 아이들의 표정이 보인다. 어쩜 이 얼굴이 수험생의 부담을 집어던진 아이들의 진짜 모습인지도. 딱 10년 전 내가 잃어버린 열아홉 청소년의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 예쁘다.
아무렴 나라고 아이들과 잘 지내고 싶지 않겠냐마는, 학생들과 지나치게 격없이 지내는 모습으로 선배 교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들이 결코 없지 않다. 가르침과 배움, 높은 교탁과 낮은 책상, 뒤를 보는 교사와 앞을 보는 학생들, 교사와 학생 사이에 구분되는 모든 것들이 여전히 내 머릿속에선 당연스레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딱히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교사에게 더 다가가고 싶은 아이들은 때로 그 모진 구분을 불편하게 느끼기도 한다. 벽을 허물기란 분명 아이들보다는 교사에게 더욱 쉬운 일이기에 아이들과 어떤 관계를 형성할지는 주로 교사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올해는 한 번 아이들 가까이에서, 남은 7개월 먼 길을 다독이며 함께 걸어가 보자.
매년 봄 벚꽃이 피었다 지는 한 주 사이 재빠르게 사진을 남긴다. 예쁜 원본 그대로를 간직하고 싶지만 세상이 흉흉한 탓에 표정을 가릴 때면 늘 아쉬울 따름. 이런 세상이라도 부디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밝고, 따뜻하고, 친절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