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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킴 Dec 08. 2022

김영하, 『작별인사』 (上)

새로운 익숙함

어떻게 글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재밌어서 이틀만에 책을 다 읽어버렸고 꽤 깔끔한 엔딩이라고 생각했는데도, ‘헉!’했던 구절들이 많아서 그런지 책을 읽으며 떠올린 생각들과 여태 가시지 않은 여운을 한곳으로 그러모으질 못하겠다. 일단 생각나는 대로 끄적여보고, ‘작별인사’나 제대로 하려고 한다. :-)


팬데믹과 신간 도서

전공 외 서적을 다시 펼치기 시작한 지 이제 겨우 1년 남짓 되었다. 그래도 올 한 해 동안 대충 스무 권 조금 넘게 읽은 것 같다. 요즈음에는 따끈따끈한 신간 도서들도 자주 기웃거리지만, 한동안은 나온 지 적어도 수 년은 된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만 골라서 읽었다. 뭘 읽어야 할지 모르기도 했고, 리스트업만 해두고 못 읽은 게 너무 많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책을 차차 읽어나가다 보니 나름의 신간 도서 구분법 — 나만의 기준일 뿐이지만 — 이 생겼다: 코로나 팬데믹이 직·간접적으로 언급되면 신간, 아니면 구간.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 등이 그랬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팬데믹 이후를 상정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이런 ‘신간’을 읽으면 기분이 조금 이상하다. 근 3년째 시달리고 있는 이 지독한 팬데믹이 옛이야기처럼 되어버린 시대 배경이 괜히 어색하다는 생각도 들고, 지류 서적이라면 왠지 꽤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일 것만 같은 고정관념이 박혀있어서 내가 몸소 겪고 있는 현재 상황이 고스란히 책에 나오는 게 소름끼치기도 한다. 언젠간 이것도 다 역사가 될 거라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서 여느 SF 소설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22.06.04 | 한결같은 취향

최신 개봉 SF 영화들보다도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영상 매체에서는 표정으로 드러나는 감정과 구두로 전달하는 대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코로나 팬데믹을 반영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실내에서 촬영하는 장면들도 많은데, 그럴 때마다 배우들이 마스크를 낀 채로 촬영하면 말과 표정 그 어떤 것도 전달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피부에 와닿도록 현실 반영이 잘 된 소설을 읽으면 뭐랄까,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현실을 잊지 않고 가상 세계를 경험하니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달까.


조화와 울림 (feat. 김초엽)

어쩌다 보니 근 몇 달간 소설, 특히 김초엽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감히 코멘트를 남기자면, 여느 소설에 비해 '이과스러움'이 다분히 느껴지면서도 바로 그렇기에 이야기가 자연스러워지고 개연성이 생겨 이야기 속의 감정과 철학(?)에 금세 몰입할 수 있다는 게 김초엽 작가가 쓴 소설들의 큰 특징인 것 같다. 그의 소설들과 『작별인사』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들을 최적의 환경에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건축된 미술관에 비유한다면, 이 책은 주변의 자연물마저도 건축의 일부로 활용한 조선의 궁궐 같다고나 할까.

「관내분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지구 끝의 온실』 등을 읽고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이 사람, 제대로 이공계다.' SF 장르에서 디테일한 설정과 묘사는 독자·관객이 작품을 즐기는 데 적지 않은 힘을 발휘한다. 『과학 교과서, 영화에 딴지 걸다』라는 책이 있을 정도로, 영화에서 묘사하는 공상 과학 기술이 지나치게 터무니없으면 심기가 불편해지는 사람도 많다. 쉽게 말해, 작품에의 몰입을 방해한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은 여느 SF 장르의 소설보다 과감한 시도를 한다. 묘사되는 공상 과학 기술이 상당히 디테일하고 소설의 끝까지 섬세한 묘사를 멈추지 않는다. 과학도가 발휘하는 바로 그 세밀함과 섬세함 덕분에 독자인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소설 속 갈등과 관계, 그리고 작가가 던지는 시사점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책을 읽을 때는 자세한 설명이 등장하는 대목이 아니라면 공상과학 소설임을 종종 잊을 만큼, 조명하고 있는 대상에 시선을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의 작품을 비추는 조명 하나까지도 신경쓰는 미술관처럼 말이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눈에 띈, 치밀하게 디자인한 미술관 내부 구조에 이따금씩 놀라는 것처럼, 소설 전반에 녹아 있는 작가의 상상력과 전공자라서 가능한 사실적인 묘사에 감탄하곤 했다.

21.04.23 광주비엔날레 | 절대 공간을 허투루 쓰지 않지

반면에 『작별인사』는 설정 자체만 보면 그리 참신하지는 않다. 휴머노이드, 인간과 거의 똑같은 수준의 인공지능, 그리고 자신이 인간인 줄 아는 로봇 등은 영화 <A.I>, 어쩌면 그 이전부터 줄곧 활용되어왔던 소재이다. 나는 늙지 않고 상대방은 늙어버리는 것도, 로봇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더라도 자주 등장하는 설정이다. 그래서 줄거리 자체보다는 김영하 작가가 소설 속에서 던지는 물음이나 그의 철학, 그리고 울림을 주는 그만의 문장들 하나하나가 굉장히 돋보였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들:

개를 닮은 로봇은 양산되고 있었지만 고양이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립적이고 도도하면서도 인간의 사랑을 듬뿍 받는 로봇이라는 게 과연 가능할까? 사람들은 그런 로봇 고양이를 구매할까?
_김영하, 『작별인사』중에서

그저 지나가는 듯한 문장인데도 이렇게 퍼뜩 독자를 놀라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일상에서도 매체에서도 작품에서도 빈번히 등장하는 로봇인데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며칠 전 새삼스럽게 경복궁을 거닐다 느낀 기분이 딱 그랬다. 매일 걷는 — 물론 다른 장소이지만 — 모래 깔린 산책길, 반포한강변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버드나무 같은 자연물이 주변에 널렸고, 어릴 때부터 툭하면 현장학습으로 방문했던 터라 경복궁이 특별하게 느껴질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새삼, 경회루가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누각 자체만으로도 참 멋있었지만 그를 둘러싼 연못과 그 주변에 놓인 버드나무가 경회루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신기하게도 — 어쩌면 당연하게도 — 경복궁의 내의 건물마다 주는 인상이 모두 달랐다. 그렇게 걷다가 『작별인사』가 떠올랐다. 진부한 소재와 유려한 문장력, 그리고 작가만의 깊은 사유가 만나면 경복궁이 되는구나,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산책을 했던 것 같다.


김영하, 『작별인사』 (下)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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