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
유람(遊覽)
_돌아다니며 구경함
유랑(流浪)
_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님.
장 그르니에의 『섬』에서 다음과 같은 단락을 발견하고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 했었다.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워 주어야 마땅할 것들이" 파 놓는 "무한한 공허"란 무엇일까. "하나의 깜깜한 점"이 흘리는 "'무력함'의 눈물"은 어떤 감정으로부터 쏟아지는 걸까. 일전에 친구로부터 자신은 "수직적 압도감보다 수평적 압도감을 더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그 '압도감'이 무슨 뜻인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 감동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캐나다 알버타 주의 밴프를 다녀오고 나서, 특히 레이크 루이스를 다녀오고 나서 친구의 말도 조금 새롭고 『섬』도 다르게 읽힌다. 호기심을 가지고 처음 읽는 글과 공감하고 재해석하며 읽는 글은 아주 다르다. 전자를 미지의 세계에 홀로 발을 들여놓는 것에 비유한다면, 후자는 이미 왔던 길이지만 무심결에 지나친 작은 것들도 눈에 들어와서 또 다른 길을 걷는 느낌. 다 읽고 나서는 마치 새 책을 읽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래서 영화든 책이든 두 번 이상 보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튼, 밴프에서는 호수를 둘러싼 산에 완전히 압도되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굉장히 예쁜 도시다. 고지대에 위치한 곳이다보니 높은 건물이 들어서기가 지리적으로 어려워서 그런지, 건물이 모두 작고 아담했다. 하나의 건물에 상가처럼 여러 매장과 식당이 들어서 있었고, 간판을 비롯한 외관이 모두 통일되어 있었다. 오래 전에 지어진 도시답게 참 예쁘다. 기분이 참 묘하다고 해야하나, 분명 밴쿠버보다 훨씬 기온이 낮았는데도 바람이 불지 않아서인지 어쩐지 포근했고, 예쁜 건물들이 늘어선 길가에 나름 자동차와 꽤 잘 되어있는 대중교통이 오가는 다운타운에서도 새하얗게 단장한 산이 무척 잘 보였다. 밴쿠버와는 또 다른 모습에 새로움도 느껴지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단박에 『섬』이 생각났다. 아, 나 이 앞에서는 정말 작고 보잘것없구나. 호수 저편에 옹기종기 있는 높다란 침엽수마저도 작은 지우개밥처럼 보일 만큼 광활히 펼쳐진 호수, 그 호수가 꽝꽝 얼어붙은 것도 모자라 그 위에 무릎까지 오도록 쌓인 눈이 말해주는 이곳의 겨울 날씨, 그리고 그 호수를 감싸안은 만년설 덮인 산. 그 산에 걸터앉은 구름과 이따금씩 내리쬐어 만년설을 하얗게 빛내는 햇살 앞에서 나는 할말을 잃었다. DSLR로 몇 번 셔터를 누르다 깨달았다. 이건 도무지 담을 수가 없다.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면서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절경이었다. 내가 화가였다면, 레이크 루이스는 결코 그릴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주의나 인상파 화가였다면 아마 이 풍경을 그리려다 말고 "'무력함'의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거나, 심지어는 화가의 삶을 접었을지도 모른다고 과장을 좀 보태 상상해본다.
"무한한 공허." 그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세비야 도시를 앞에 두고 깜짝 놀랄 때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말처럼, 나는 이상하게도 광활하고 또 동시에 고고(高高)히 펼쳐진 레이크 루이스를 보고, 호숫가에 서서 어쩔 줄 몰라하는 먼지같은 나의 모습을 되려 마주했다. 그것은 어쩌면 진정 공허함일지도 모른다. 아등바등 뭐라도 해보려 고작 수 년을 발버둥쳐도 결국 몇백 년을 굳건히 제자리에 서 있는 — 물론 지각변동에 따라 조금씩 움직이기야 하겠지만 — 자연 앞에서 꼼짝도 못할 텐데,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꼭 공허함으로만 남지는 않는다. 바로 그렇기에 오히려 안도감과 충만함을 느꼈다. 그래, 내가 어떤 해괴한 짓을 해도 나는 이 앞에서는 먼지일 뿐이다, 나도 결국 먼지로서 여기의 일부이다, 뭐 그런 생각들이 들었으니 말이다.
『섬』을 조만간 다시 읽을 생각이다. 자꾸만 새로운 문장이, 그러니까 내가 처음 읽을 때 놓친 문장이 눈에 들어와서 책을 자꾸만 펼치게 만든다. 다 읽고 나면 어떤 생각이 들려나.
유람하는 유랑객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