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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내리던 날 Sep 26. 2022

사랑이 사랑일 수밖에 없기에


갑자기 찾아온 봄이었다.


자신이 하얗다고 느껴지던 초라한 봄날, 갓 피어난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개구리 우짖는 소리에 날아가던 이름 모를 작은 새들도 덩달아 울먹였다. 봄날의 모든

것들은 그렇게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 한 구석에 보이지 않는점 하나를 찍는 그녀를 만났다. 유난히 말수가

적은 긴 머리 소녀였다. 뽀얀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예뻤지만 이름조차 외자로,부를 때마다

왠지 슬퍼졌다.


같은 학과에 다니는 후배였던 그녀는 학교에서만은 애써 모른 채 했다. 나는 그런 그녀가 

원망스러웠지만 한편으론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70년대 중반이었으니'CC(캠퍼스 커플)'

이란 용어 자체가 생소하리만큼 어색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흔한 러브 스토리의 결말은 이랬다.


아쉬운 봄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될 무렵, 그녀가 내게 부탁이 있다며 울먹였다. 초롱초롱한 

눈가에 눈물을 머금은 채로.


돌아오는 초파일 밤에 연등을 들고 거리를 같이 걸어달라는 것이었다. 상상해 보시라.

어둑한 거리를 불그레이 피어난 연꽃등을 들고 나란히 걷고 있는 한 쌍의 청춘남녀..

그림이 그려지시지 않는가!


나는 기꺼이 연등을 들고 그녀 곁을 말없이 걸었다. 묵언 수행하듯. 꿈같은 시간이 

다 지나가고 '헤어질 시간'이 돌아오자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난 아빠가 안 계셔...엄마랑 둘이만 사는데 우리 아빠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출가를 하셨어.. 

스님이 되셨.." 끝내 말을 잊지 못하며 고개를 떨구고 마는 그녀.


그게 왜.. 어때서.. 한 달을 설득했지만 그녀는 이미 그날 '헤어질 결심'으로 연등을 같이 

들자던 것이었다.


난 아직도 푸른 잔디밭에서 둘이 찍은 유일한 사진 한 장을 버리지 못하고 45년 동안 보관 중이다.


사랑이 사랑일 수밖에 없기에.


#부산다대포_Aug2022

#청년기실화_복붙_재배포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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