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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와 찰리 Oct 07. 2020

[술로 빚은 인간관계] -3 막걸리는 달달한 게 좋더라

곰살궂은 엄마와 무뚝뚝한 딸

글 | 미지


‘딸은 엄마의 거울’이라는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같은 걸 보고도 엄마와 나는 생각하는 게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쌀쌀해지면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자연이 살아있음에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은 우리 엄마이고, 기온이든 바람이든 아무 상관없다며 9월까지 반팔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나다. 취향도 성향도 많이 다른 엄마와 딸은 26년간 동고동락하며 서로가 얼마나 비슷한 점이 없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이제야 조금 딸은 엄마의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곰살궂은 성격을 견딜 수 있게 됐고 엄마는 딸의 기복 없는 성격과 무뚝뚝한 리액션에 익숙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서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말을 자주 한다. 그럴 때면 ‘쟤(엄마)는 왜 저럴까’하는 말을 열심히 얼굴로 내뱉는다. 


그래도 닮은 구석은 있다. 두 사람 다 음주가무를 좋아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싶은 날이나 이해할 수 없는 날엔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마시는 날이 가장 많다는 걸 딸은 알고 있다.) 술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지만 알코올 취향은 전혀 겹치지 않는다. 딸은 언제나 캔맥주와 튀김 안주, 엄마는 막걸리와 김치 조합을 선호한다. 두 사람은 본격적인 음주를 시작하기 전에 서로의 술 취향에 대해 꼭 한 마디씩 덧붙인다. 


“대체 막걸리랑 김치는 무슨 조합이람?”   

“맥주가 술이냐?”


최근 엄마와 딸의 대화 주제는 세 가지로 추려졌다. 일, 집 그리고 결혼. 엄마는 딸이 알아서 잘하겠거니 생각하면서도 10개월째 집에서 놀고먹는 딸이 조금은 걱정스럽다. 딸도 마찬가지로 줄곧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마트 계산원 일을 하는 엄마가 불안하기만 하다. 

집에 대한 대화는 언제나 한숨과 걱정으로 끝난다. 현재 사는 집은 딸과 엄마, 둘째인 아들까지 함께 살기엔 너무 좁다. 나가 살자니 보증금을 마련할 형편이 되지도 않는다. 딸과 아들은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부동산 투자니 빌딩 재테크니 하는 말이 우리에게도 해당됐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그리고 결혼은, 딸만의 고민이다. 스물여섯인 딸의 친구들이 작년부터 슬슬 결혼 소식을 전해왔기 때문이다. 결혼은커녕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딸은 ‘그래도 결혼은 아직 너무 이르지 않나’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곧바로 이런 생각이 지나친 오지랖이란 것을 깨닫고 황급히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엄마도 나를 스물다섯에 낳았으니… ….’      


그렇다. 엄마와 딸의 나이 차는 딱 25이다. 이십오라는 숫자는 두 사람에게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 각자의 인생 2막을 열었던 나이이기 때문이다.    


스물다섯 살 엄마는, 캠퍼스 커플이었던 다섯 살 많은 선배와 결혼해 같은 해 떡두꺼비 같은 딸아이를 출산한다. 곧바로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남편과 그의 부모, 동생들과 함께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녀에게 결혼 생활은 가족과 처음으로 떨어져 사는 첫 독립이었다. 같은 해 굵직한 대사를 2개나 연달아 해치운 그녀는 커리어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몇 개월 뒤 영어영문학 전공을 살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엄마의 스물다섯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인생 2막이라는 말을 실감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스물다섯 살 딸은, 작은 신문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평일에는 3~4시간만 자고 주말마저 회사에 바치는 날이 많았다. 딸은 ‘모두가 다 이러고 산다’라는 꼰대들이나 하는 말을 되풀이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버티다 보니 스물여섯이 돼 있었다. 딸에게 스물다섯은 체력, 가치관, 식성, 연애관 등등 많은 것을 변화시킨 나이였지만 특별한 해는 아니었다. 너무 빨리 지나가다 보니 스물여섯인 지금이 스물다섯처럼 느껴진 적도 많았다.


“엄마, 나는 결혼 안 할 수도 있어.”

“못 하는 거 아니고?!”

“안 하는 거야! 나는 엄마처럼 할 자신도 없어.”

“못 할 건 또 뭐 있니. 다 그렇게 사는 거지.”


엄마도 ‘다 그렇게 산다’는 말을 믿고 버티며 살았을까. 딸은 문득 지난번 앨범에서 본 엄마의 20대 모습을 떠올린다. 성격은 다르지만 동글동글한 인상이 자신과 참 많이 닮아있었다. 


“오늘은 맥주 말고 막걸리를 마셔볼까봐.”

“네가 웬일이냐!”

“대신 달달한 밤막걸리 어때?”

“지는 무뚝뚝하면서 술은 또 달달한 걸 좋아하네. 좋다, 어서 꺼내봐.”  


엄마의 원픽은 단연 장수. (사진 | 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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