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생활교육위원회는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오늘은 즐거운 금요일답게 평소보다 한산한 지하철을 타고 기분 좋게 학교에 도착했다.
하지만 교무실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담임으로서의 업무 시작.
2주 전에 흡연, 그것도 교내에서 간도 크게 뻐끔뻐끔하다가 학생부장님께 딱 걸린 두 아이의 교내봉사활동을 지도해야 한다.
어제 집에 갈 때 내일은 제발 늦지 말고 8시까지 등교해서 3층 복도를 청소하라고 했는데 둘 중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바로 전화기를 들고 한 녀석에게 전화하니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어쩌고 저쩌고"가 흘러나온다. 뭐지. 똥 싸러 갔나. 평소에도 맨날 배 아프다고 수업시간에 화장실에 가는 녀석이니. 그럼 다음 사람.
"여보세요?"
"00아, 어디니?"
"카펜데요?"
"...???"
아니, 아직 봉사활동 시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당당하게 카페라니?
"너 청소는 한 거니?
"네!!"
"너도 ㅅㅅ이처럼 7시 50분에 와서 30분 동안 청소하고 나간 거야?"
"아뇨, 저는 8시 10분에 왔는데 오자마자 배 아파서 똥 싸니까 ㅅㅅ이가 청소 다 했다고 나가자고 해서 나왔어요."
하하
이 아이가 오늘만 이랬으면 내가 이렇게 화가 나지도 않는다.
선도위원회 징계로 4일간 매일 1시간씩 교내봉사를 해야 하는데 첫날인 이번 주 화요일엔 무단지각을 하고, 어제는 점심을 천천히 먹어야 해서 봉사를 '못' 했다고 하는 아이다.
사실 선도위원회(정식 명칭은 '학생생활교육위원회'이지만 편의상 선도위원회라 하자)와 교내 봉사활동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모르겠다.
우리 학교는 좀 특수한 상황이라 선도위원회를 생활지도부에서 주관하지 않고 해당 학생의 담임이 모든 일처리를 하도록 되어 있는데 학생에게 선도 사안 진술서를 받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선도 사안 조사서 작성, 선도위원회 소집, 위원회 개최, 회의록 작성, 회의 결과 기안, 징계 시행문 기안, 학생의 원적교로 징계 결과 알림까지 오조 오억 개의 업무가 뒤따른다.
뿐만 아니라 등교 전 30분, 점심시간 30분을 활용하여 봉사활동을 시행하므로 학생들이 징계를 받는 기간에는 담임교사도 일찍 출근하고, 점심시간을 쪼개어 지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힘들게 징계가 이루어지면 학생들에게도 뭔가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현실은 나에게만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
하나씩 늘어가는 흰머리...
문서함에서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을 온라인으로 수강하라는 공문을 보고 있으니,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샘솟는다. 잘못을 저지르고 반성은커녕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학생을 신고할까, 아님 교육적 효과는 안드로메다로 가 버린 지 오래인데 그저 형식적인 서류만을 요구하는 학교 규정을 신고할까?
하긴 신고해도 받아주지도 않겠지.
아침부터 혼자 열 냈더니 배가 너무 고프다.
일단 밥이나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