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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민 Sep 23. 2022

나에게 딱 맞는 직업은 무엇일까?

나의 강점을 살리자

토머스 암스트롱이 지은 『증상이 아니라 독특함입니다』에서는 ‘적소 구축’이라는 개념을 통해 

‘비버가 댐을 짓고,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것처럼 주변 세상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보다는 세상을 자신의 필요와 방식, 자질에 맞게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만약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생활방식이나 직업 선택을 통하여 자신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야 한다고도 덧붙이며, ADHD 성인의 재능이 돋보일 직업 목록을 몇 가지 소개했다. 


라디오 아나운서, 레크리에이션 강사, 기자, 경찰관 또는 소방관,
자연 사진작가, 응급실 의사, 강연자, 프리랜서 작가, 항공기 조종사


비록 실제로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모두 내가 한 번쯤은 꿈꿔봤던 직업들이다. 나와 같은 사람에게 사무실에 앉아 매일 반복되는 업무를 하는 것은 견디기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것보다는 새로움과 변화가 많고, 신체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는 직업을 고른다면, 회사와 나 자신에게 모두 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의 강점을 잘 살릴 수 있는 직업은 무엇일까? 내가 경험했던 직업 중 가장 즐겁게 일했던 것은 산업 간호사이다. 간호학대사전에 따르면 산업 간호사는 ‘간호사 면허 소지자로서 산업장에서 근로자의 건강관리를 전담하는 전문 요원’이다. 


내가 일했던 회사는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이 밀집된 아파트형 공장 안에 위치해 있었는데 찾아오는 분들이 4,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대부분이었다. 당뇨,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에 대한 교육과 상담을 진행하고, 건강검진 결과에 따른 사후관리를 제공하는 것이 나의 주된 업무. 하지만 20대 중반의 나이에 부모뻘 되는 분들을 살갑게 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처음 보는 사람과 친해져 금연에 성공하도록 돕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우리 아버지도 30년이 넘도록 금연을 못 하고 계시는데 옆집 아저씨보다도 더 거리가 먼 사람과 그런 관계가 가능할까.


그러나 막막했던 것도 잠시. 변화와 도전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이 다시 발동하여 새롭고도 효과적인 금연 상담기법을 찾기 위해 논문까지 찾아보며 연구를 시작했다. 처음엔 상담 1회 만에 금연 못 하겠다며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몇십 년 동안 계속해오던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겠냐며 열심히 설득하는 나의 모습에 6개월 금연 성공자, 1년 금연 성공자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평생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던 분에게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등 기본적인 검사와 상담해드리고 병원에 꼭 가보시라고 했더니 얼마 후 약을 꼬박꼬박 잘 먹고 있다며 약 봉투를 들고 숙제 검사받듯이 다시 찾아온 분도 계셨다.


수술실에서 2년 가까이 일하는 동안 선배에게 매일매일 혼나는 것이 일상이었던 내가 다른 사람들을 교육하고, 그로 인한 건강의 변화까지 실제로 목격하게 되니 뿌듯함을 넘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이렇게 간단한 검사와 짧은 면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건강에 내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니. 깨진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난 자존심이 회복되는 것을 넘어 총알에도 끄떡없는 방탄유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수술실에서는 내가 창의적으로 일을 기획해서 하기보다는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방사선사 등등 많은 직종의 사람들이 하나의 팀이 되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실수 없이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정형화된 업무가 안정감을 주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에 가장 최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를 교육하고, 그 사람이 좀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찾는 일에 많은 흥미를 느끼는 사람. 이것은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한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퇴사에 대한 불안함으로 인해 시도조차 해 보지 못했다면 알지 못했을 나의 모습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적성’이라는 것에 많은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다. 적성이라는 게 어디 있나, 죽고 싶을 만큼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면 하다 보면 다 적응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일을 하며, 그 무섭다는 월요병까지 극복하게 되니, 한 번 사는 인생에서 좀 더 행복하게 직장생활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 세상에 나를 끼워 맞추기보다는 세상을 나의 필요와 방식에 맞게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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