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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민 Nov 16. 2022

보건교사와 담임교사의 대학 입시 준비(1)

대학을 담임이 가는 건가?

11월. 불어오는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계절이 왔다. 차가워진 공기에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른다. 맑고 쾌청한 하늘을 보며 아이들과 함께 체험학습을 나가고 싶지만 우리 반 아이들은 그 유명한 "대한민국 고3"이다. 여기에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 수능날에 하늘 위의 비행기도, 도로 위의 자동차도 멈추게 하는 나라이니 말이다.


교사가 되고 나서 보건교사로 2년, 고3 담임으로 2년을 보냈는데 당연하겠지만 학생들의 입시 지도 방법이 매우 다르다. 보건교사로 있을 때에는 간호학과 등 의료계열 진학을 희망하는 일부 학생들의 자소서나 면접 준비를 조금만 도와주면 되었지만, 고3 담임을 맡게 되니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서 내가 대학을 가는 건지 아이들이 대학을 가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그래도 올해는 고3 담임 2년 차에 접어들어서 작년에 비해서는 좀 더 체계적으로 입시 지도를 하고 있다. 작년엔 담임이 처음이기도 했고, 16명의 학생들 중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과 취업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 절반 정도씩 나눠져 있어서 어느 한쪽에만 집중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학생수가 10명으로 줄었고, 모두 대학 진학을 희망하기 때문에 1:1 맞춤지도가 가능하다.


수시 1차 모집이 끝나고 2차 모집 중인 지금, 지난 9월부터 지금까지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의 일을 차례로 정리해 보면 이렇다.


Step 1. 원서를 어느 지역까지 쓸 것인지 마음의 준비할 시간을 준다.


아이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태어나 수학여행 외에는 서울을 떠나본 적이 없기에 전라도나 경상도가 어디에 있는지, 집에서부터 얼마나 먼 지 전혀 알지 못한다. 따라서 첫 번째 단계는 빔프로젝트를 켜고 교실 앞쪽에 대한민국 지도를 커다랗게 띄우는 것. 서울에서부터 지방의 아무 대학이나 좌표를 찍고 대중교통 길찾기를 누르면 아이들의 입에선 욕이 나온다. 그야말로 쌍욕이. 


"샘, 저길 어떻게 다녀요? 지하철도 없어요?"

"야 지하철이 어딨어. 시내버스도 하루에 2-3대만 다니는데"

"아니 근데 저거 설마 산이예요? 학교 옆에 아무것도 없는데?"

"응 버스 타고 30분 나가면 읍내가 나오는데 저기서는 김밥집에서 족발도 팔고 피자도 팔고 치킨도 팔아."

"엥?? 왜요???"

"동네가 작아서 사장님이 다 똑같거든^^ 어떤 번호로 걸어도 다 같은 사장님이 전화를 받으실 거야^^ 아 그리고 참고로 말해두는데 배민 어플은 지우는 게 좋아. 있으나 마나 거든ㅎㅎㅎㅎㅎ"


여기까지 말하고 나면 아이들 얼굴에서 조금씩 웃음기가 사라진다. 평생을 서울에서 살아왔으니 지방, 그것도 읍면리 단위의 지역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정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2학년까지의 내신 성적도 처참한 것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일주일 동안 가족들과 상의해보고, 스스로도 어디까지 원서를 낼 수 있을지 잘 생각해 보라며 시간을 주었다. 


Step 2. 마지노선, 최후의 보루를 정하다.


"엄마가 지방대는 죽어도 안 된대요. 무조건 수도권에 있는 학교를 가래요."

"저는 제주도만 아니면 돼요. 땅끝마을이라도 갈 수 있어요."

"할머니 댁이 있는 강원도는 괜찮아요. 독립할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아요."


저마다 자신의 남방한계선을 얘기하고 지도에 선을 긋는다. 본인이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있다면 육로로 연결된 곳 어디든 괜찮다는 아이부터 학과를 바꾸더라도 무조건 집에서 통학 가능한 거리만 지원하겠다는 아이까지 천차만별이다.


Step 3. 숫자와의 싸움.


이제부터는 숫자 싸움이다. 1학년부터 3학년 1학기의 내신 성적을 나노 단위로 분석하는 것은 물론 각 학교의 전년도 입시결과를 분석해서 최저컷, 평균컷, 성적반영비율 등을 정리한다. 4년제 대학은 고등학교 5개 학기의 성적을 모두 반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전문대는 얘기가 다르다. 우수한 1,2개 학기의 성적만 반영하거나 전과목이 아닌 국어와 영어 성적만 반영하는 등 대학의 수만큼이나 전형 방법도 다양하다.


게다가 일반 전형, 일반고 전형, 특성화고 전형, 기회균형선발 전형, 특별 전형 등등 온갖 전형에 따라 지원자격도 모두 다르므로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도대체 일반 전형과 일반고 전형은 무엇이 다른 것인지? 모집요강을 읽고 또 읽어도 교사인 나도 애매모호하기만 한데 학생들은 오죽할까. 공허하게 텅 빈 눈동자만이 허공을 떠돈다. 할 수 없이 온갖 문의사항은 내가 직접 대학에 전화를 걸어 확인한다.


Step 4. 최종 결선 진출 Top 10 선정.


턱도 없이 컷이 높은 학교와 시내버스조차 다니지 않는 산골짜기에 있는 학교 등을 제외하고 나면 학생들이 원서를 낼 학교는 각자 10개 정도로 추려진다. 면접에 자신이 없는 학생은 학생부 성적만 반영하는 곳만 골라 지원하고 약 한 달 후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곳은 경쟁률과 등급컷이 높을 뿐만 아니라 내신 성적을 뒤집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면접점수를 40% 이상 반영하는 대학을 선호한다.


Step 5. 원서 접수


여기까지 하면 원서 접수와 관련된 모든 업무는 끝이 난다. 이제는 접수 기간이 끝나기 전에 학생들이 직접 진학사나 유웨이를 통해 원서 접수를 하고 전형료를 입금하는 일만 남았다. 그렇게 꼼꼼히 확인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또 했건만 아이들은 이상한 전형에 지원하기도 하고, 주간 대학이 아닌 야간 대학에 원서를 넣기도 한다. 아이고 두야. 친절한 학교는 사정을 듣고 원서를 다시 접수해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한 번 넣으면 끝이라며 수정이 불가하다고 한다. 이것도 본인의 몫이겠지.


어쨌든 원서 접수 완료했으니 대학 입시 끝!! 이 아니고 이제 큰 산 하나를 넘은 것이고,

우리 앞엔 면접 준비라는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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