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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민 Aug 02. 2023

'체벌'을 하면 '교권'이 올라가나요?

10년 넘게 친하게 지낸 지인과 '손절'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다른 곳도 아닌 여름휴가로 떠난 부산 해운대 한복판에서. 펄펄 끓는 진한 국물의 곰탕을 먹을 때였다. 평소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지 모르지만 그날만큼은 지인의 말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체벌을 무조건 금지하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적당한 체벌도 때론 필요한데 경우를 불문하고 전면 금지하면 안 되지. 우리 어릴 때는 선생님한테 찍소리도 못했잖아."


교사인 나를 위한답시고 한 말이었을까. 오랫동안 봐 왔던 지인은 누구보다 배려심이 많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성품을 알기에 나와는 생각이 조금 다르더라도 애써 웃으며 대화의 주제를 바꾸려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의 내 심리상태는 폭발하기 직전의 활화산 같았다. 불과 며칠 전 소중한 동료를 가슴 아프게 잃었지만 해결책은커녕 진상규명조차 장담할 수 없는 참담한 상황이었으니. 내 첫 제자들과 고작 한 두 살 차이인 생때같은 청춘을 지켜주지 못했으니. 세상을 좀 더 먼저 살아간 어른으로서, 선배교사로서 부끄럽고 가슴 아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적당한 체벌이라니. 그런 게 어딨어. 한 대 때리면 적당한 체벌이고, 열 대 때리면 아동학대인 거야?"

"뭐 꼭 몇 대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얘기지."

"그러니까 그 '어느 정도'라는 건 누가 정하는 건데? 친구랑 싸우면 한 대, 남의 물건을 훔치면 다섯 대. 뭐 그런 거야?"

"그건 모르겠지만 체벌을 통해 잘못된 행동을 고칠 수가 있지."

"체벌을 한다고 해서 아이의 문제행동이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 우리 학교에 절도나 폭행으로 경찰서에 드나드는 아이들이 많지만 걔네를 어릴 적부터 심하게 체벌한다고 해서 바르게 키울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보단 낫겠지."

"그건 폭력을 또 다른 폭력으로 덮겠다는 거잖아. 아이가 문제행동을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고,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건데 그걸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그냥 덮어놓을 뿐이라고."

"근데 예전에는 선생님한테 함부로 못 했잖아."

"나는 어릴 때 아무 잘못을 안 하고도 많이 맞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생을 때리고 싶지는 않아. 내 주변에 있는 선생님들도 마찬가지고. 이 사건이 체벌 금지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지 전혀 모르겠어."


이후의 대화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인이 갑자기 정치 얘기까지 꺼내며 논점이 흐려졌고, 서로의 감정만 상하게 하는 날 선 말들이 오갔다는 사실만 남았다.


임용된 지 겨우 만 일 년이 지난 새내기 교사가 죽었다. 그것도 교실 안에서. 우리 사회는 고인을 추모하기 이전에 각자 자신이 어린 시절 교사에게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한편에선 이 같은 일을 막기 위해 체벌을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대한민국에서 초, 중, 고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학교에 대해서, 교사에 대해서, 교육에 대해서 쉽게 한 마디씩 보탠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겠거니 쉽게 단정 지어 버린다. 하지만 2023년의 학교는 예전과 많이 다르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게 흘렀다.


평소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잘하지 못한다. 대개의 경우는 나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친절해 보이는 가면을 쓰고 속마음을 숨긴다. 아마 많은 교사들이 나와 비슷할 거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학교 규칙 잘 따르는 범생이였을 테니. 학교에서는 바르고 고운 말만 배웠지,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에게 어떻게 내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는지는 배우지 못했다.


그런 교사들이 길 위에 섰다.

2023년 7월, 그 어느 땡볕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그 어느 폭우보다 더 많은 눈물로 교육정상화를 외쳤다.


교사는 가르치고 싶다.

학생은 배우고 싶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우린 알고 있네 우린 알고 있네

배운다는 건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동요, 꿈꾸지 않으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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