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의 헤어 취향은 크게 '단발 파'와 '긴 머리 파'로 나뉘는 듯하다. (물론 예쁘면 다 좋겠지만.) "난 무조건 단발머리.", "난 긴 웨이브 헤어가 좋던데." 하는 주장들을 듣고 있으면 흥미진진하고 재밌다. 나 또한 헤어 취향이 확고한 편이다. 약간의 반곱슬에 이마를 살짝 드러낸 헤어를 좋아한다. 어떤 헤어스타일을 연출하냐에 따라 사람의 이미지는 확연히 달라진다. 그리고 자연히 내 취향인 쪽으로 눈이 간다.
종종 아니 자주 남편에게 어떤 헤어스타일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다른 건 몰라도 헤어만큼은 남편의 취향에 맞추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은 항상 본인에겐 취향 같은 게 없노라고 설명했다. 내가 머리카락을 길면 긴 머리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내가 머리카락을 자르면 단발머리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답. 정. 남.
한 가지 헤어스타일을 오래 유지하는 걸 누구보다 질려했던 나는 자주 단발머리, 중단발, 긴 머리를 오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미용실에 가는 게 귀찮고 피곤하게 느껴졌다. 어느덧 나의 추구미는 '편안하고 관리가 쉬운 헤어'가 되었다.
올여름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중단발로 변신 아닌 변신을 했다. 미용실에서 막 나온 내게 남편이 말했다.
"이 머리가 제일 예쁘다."
"그래? 그럼 앞으로 계속 이렇게 할까?"
"응. 예쁜데?" 역시 믿거나 말거나 한 칭찬이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긴 머리보다 훨씬 관리가 수월하고 단발머리에 비해 휘뚜루마뚜루 잘 묶이니 만족스러웠다. 그의 발언이 참이라면 더 좋고 말이다.
몇 달이 지나니 중단발이었던 헤어가 난잡한 길이로 변모했다. 이도 저도 아닌 헤어스타일 때문에 거울을 볼 때마다 못마땅했다. 또다시 길어? 잘라? 하는 갈림길에 봉착한 나는 TV 시청 중인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나 펌을 해 볼까?" 남편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응. 해 봐."라고 답했다. 뭐든 오케이라고 외치는 남편에게 이번엔 질문을 바꿔 보았다. "앞머리를 앞으로 내 볼까?" 그러자 남편이 이런 답변을 내놓았다.
"앞으로 말고 옆으로 넘기는 거 해 봐. 그런 머리는 안 해 봤잖아."
헐.
노답...
오 년 넘게 옆으로 넘기는 앞머리를 고수하고 있었던 나는 파르르 두 눈을 감았다. 난 대체 누구와 '외모 췍'을 논해왔단 말인가. 긴 머리를 하든 단발머리를 하든 펌을 하든 이제 다시는 그에게 헤어 상담을 하지 않으리라. 뭘 해도 예쁘단 거짓말을 평생 주고받고 살려거든 반쯤 감은 눈으로 서로를 봐야겠지. 그러니 앞머리 사건은 쭈욱 묻어두는 걸로협상 종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