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 계약직, 무기 계약직 체험기

십인분 인생 나가신다 7

by 미세스쏭작가

대학교에서 행정 일을 하면서 “감사합니다” 소리를 유례없이 많이 들었다.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일을 잘한다. 업무 처리가 빠르다.”라는 칭찬 세례를 받으니 구름 위로 둥둥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맡은 업무를 마치기만 하면 당당하게 정시 퇴근을 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개똥밭에서 굴러본 내겐 이 모든 게 신세계였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일하니 월급날이 빨리 돌아오고 많지 않은 급여이지만 돈도 착착 잘 모였다.

업무에 빠르게 적응했고 오후 두 시 정도가 되면 그다지 다급한 일거리도 없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미 완료한 일을 재검토하고 추후 일정을 점검하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같은 일을 하면서 업무량이 방대하고 어렵다는 이유로 도망치듯 퇴사한 사람들도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사기업에서 우로 굴러 좌로 굴러 열차 열차를 죽도록 해본 나로서는 업무 처리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양한 곳에서 열심히 훈련받고 부딪힌 경험이 두루 도움이 됐다.


계약직 직원이다 보니 그다지 경계하는 이도 없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 또한 편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이전 직장에서는 화장실만 가도 눈치를 줬는데 각자 제 할 일만 하면 출퇴근, 연차, 업무 관련하여 나무라는 이가 없었다. (대체 나는 어떤 인간들과 일을 해왔단 말인가) 본래 직장에 미련이 없고 피 튀기는 경쟁을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약육강식이 덜한 계약직의 세계가 여러모로 잘 맞았다.

약속된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몇몇 분들께서는 헤어짐을 아쉬워하시며 나를 무기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할 방법을 찾아보는 등의 신경을 써주셨다. 이 년마다 사람을 새로 뽑아야 하는 실정에 관리자들은 넌덜머리가 난다고 했다.


주변분들의 추천 덕분에 나는 결국 무기 계약직 직원이 되는 기회를 잡았다. 로 맡게 된 일은 기업 및 국책 과제의 연구비 관리였다. 직책은 같았지만 업무의 성격과 하는 일 자체는 매우 달랐다. 학과 행정은 사람들과 대면을 하는 일이 절반이었고, 연구비 행정은 식사도 업무도 오롯이 나 홀로였다. 이런 구조의 장점은 크게 눈치 볼 상관이 없는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고, 단점은 쉬는 날에도 일이 터지면 일단 업무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숫자를 싫어하고 계산은 더욱이 혐오하는 나였기에 출근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옷을 거꾸로 입고 출근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기 계약직이었으므로 매년 재계약을 했고 연구실 대표님은 계약서를 새로 쓸 때면 급여를 인상해 주셨다. 그러나 일의 성격이 자신과 맞지 않으면 무기 계약직이나 유기 계약직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 나는 대표님의 행정 권한을 무려 2040년까지 부여받았지만 죄송하게도 사직서 수리를 요청했다. 급여, 출퇴근 시간 등의 업무 조건이 전보다 훨씬 좋았으나 나름 안정적인 직장을 내 손으로 해고해 버렸다. 이 모든 결정을 존중해 주고 격려해 준 남편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어찌 다 갚을까. ‘평양감사 자리도 제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옛말이 있는데 내 상황이 그러했다.

계약직 직원으로 사 년을 보내면서 직장에 대한 트라우마를 조금은 치유할 수 있었다. 모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빌런 미리 씨에 비하면 견딜만했고 일한 만큼 대우받을 수 있는 환경 역시 좋았노라 평하고 싶다.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해주신 직장 분들 덕분에 계약직 직원으로 지내면서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았다.


생업의 전선으로 나가게 되면 또 어떤 인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조금은 자신감을 얻었고 희망도 보았다. 이 모든 조건에 기쁨과 감사를 충만히 느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감사 습관을 길러온 덕도 있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내가 개똥밭에서 부지런히 굴러봤기 때문이 아닐까. 가까운 미래에 근로 의지가 생기거든 일순위로 유기 계약직 직장부터 기웃거려 보련다. 백수의 로망을 저버릴 수 없는 내게는 그 정도가 딱 좋다.

조금씩 더욱 나를 알아가는 삶. 맞지 않는 것, 싫은 것은 미니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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