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강사 응원을 힘입다

십인분 인생 나가신다 8

by 미세스쏭작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 잡고 강의하는 일이 궁금했다. 초등학생 때 반장선거에 나가면서부터 강사에 관심이 생겼다. '뭐든 하고 싶으면 해 보자.' 구직 사이트에 접속했다. 강사 일 좀 구해 보겠다고 열렬히 검색했는데 마땅한 자리가 없었고 간혹 보이는 회사는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스피치 강사, CS 강사, 사내 강사 등등 모든 문이 닫혀 있던 그때 눈에 띈 구직광고 하나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화장품 교육 강사’였다. 강사라는 두 글자만 보고 얼른 이력서를 넣었다. 서류 면접에 통과하여 무작정 면접을 보러 갔다. (다단계 회사 아님) 내가 그려 온 그림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드디어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 앞에 서는 강사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흥미진진한 나의 강사 데뷔는 이렇게 시작 됐다.

면접 당일부터 출근 첫 주까지 사장님과 사내 직원들은 여사님들과 부딪치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여사님들은 내 강의의 청중이자, 각자 사업자등록을 하시고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시는 분들이셨다. 그들 역시 사장님이나 다름없었다. 여태 교육 강사 태반이 여사님들과 싸우고 울면서 회사를 뛰쳐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 같은 분들과 싸울 일이 뭐가 있지?’ 하고 생각했다. 여사님들의 텃세에 너무 상처 입지 말라며 지레 겁을 주는 사람들 틈에서 긴장하며 첫 강의를 준비했다.

그런데 강사로 채용된 내가 하는 일은 강의가 이 할이요, 화장품 정리가 팔 할이었다. 출근하면 화장품 바코드를 찍고 납품된 물건을 정리하느라 먼지를 뒤집어써야 했다. 박스를 까고 또 까고(전문 용어로 박스 까대기) 화장품을 꺼내서 발주 리스트와 대조하고 다시 주문을 넣으면서 몹시 현타가 왔다. ‘넘치는 일복에 강사는 무슨.’ 화장품과 한바탕 정리를 치르고 나면 강의를 준비할 시간이 전혀 없었고 집에서 교안을 짜며 연장근무를 해야 하는 가혹한 현실이 반복됐다. 나의 데뷔 무대(?)를 위해 짬짬이 PPT와 대본을 만들고 리허설까지 했다. 교안을 삼켰다 싶을 정도로 달달 외워서 내 것으로 소화했기에 첫 강의는 대성공이었다. 사장님과 직원들은 이게 무슨 일이냐며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여사님들의 호응을 구경했다.


회사에서 화장품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귀가하면 샤워로 먼지를 씻어내고 다시 교안을 만들었다. 화장품 설명과 더불어 내 이야기와 세일즈 동기부여를 조금씩 보태 흥미롭게 들을 수 있는 강의를 기획했다.

가정에서 엄마의 역할을 해내느라 지치고 바깥에서는 영업에 치여야 하는 여사님들에게 조금이라도 힘과 재미를 보태드리고 싶었다. 진심과 노력은 통하는 법. 나의 청중인 여사님들은 내가 강의를 할 때면 핸드폰 화면에 전광판을 만들어서 나를 응원해 주셨고 급기야 촬영까지 하셨다. 여사님들과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던 기존 직원들은 전례에 없던 광경을 보고 콧바람을 씩씩 내기 시작했다. 청중과 이 정도로 잘 지내는 것은 그들 계획에 없었나 보다.


나의 키만큼이나 높이 쌓여 있던 화장품 택배와의 한판승, 아침 체조인지 뭔지 강의 전에 음악을 틀어놓고 췄던 율동은 아직도 소름이 돋을 만큼 웃긴 흑역사이다. 하지만 내가 마이크를 잡고 강의를 시작할 때면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초짜 교육 강사를 바라봐주던 고운 얼굴들은 잊고 싶지 않다. 처음에는 그저 도도하고 사무적으로만 나를 대했던 분들이 점차 마음을 열고 다가오시는 모습이 참으로 소중하고 예뻐 보였다. 우린 서로에게 든든한 편이 돼주었고 따스한 봄볕이 여름으로 변해가던 화창한 계절에 헤어졌다. 자신감이 없어질 때면 가끔 여사님들의 전광판 응원을 떠올린다. 도전하지 않았다면 미숙했던 내가 어디서 그런 응원을 받아볼 수 있었을까. 그러니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면 일단 해보고 볼 일이다.

쌈마이웨이 마이크 또라이 최애라, 내 청춘을 닮은 최애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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