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시험이 남긴 것
십인분 인생 나가신다 9
파란만장한 청춘에 마침표를 찍어 보겠다고 이십 대 중반에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다. 유니(구 남친이자 현 남편의 가명)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함께 고시 공부에 뛰어들었다. 우리 엄마는 워킹맘이었는데도 매일 다 큰 딸과 유니의 도시락을 정성스레 싸주셨다. 임용시험을 준비 중인 여동생의 도시락 역시 엄마의 손에서 탄생했다. 엄마는 항상 콧노래를 부르며 ‘이건 이렇게 먹고 저건 저렇게 먹고 오늘도 힘내거라’를 외쳐 주셨다.
곁에 따뜻한 가족과 늘 한결같은 남자친구가 있었음에도 고시생의 삶은 너무나 불안하고 가난하고 외로웠다. 당시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은 최고치를 기록했고 깜깜한 밤이면 암기한 것들을 되뇌느라 제대로 잠도 못 잤다. 하루는 그런 나를 일으켜 세우며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뭐가 그렇게 불안해. 딸, 엄마를 봐. 엄마도 이렇게 살아가잖아. 엄마가 있잖아.” 가난 속에서 자식을 셋이나 키워 대학교를 졸업시키고 긍정 여왕으로 살아가는 엄마를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감히 부모님 앞에서 죽상을 할 수는 없지 싶어 마음을 단단히 동여매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 결과 다행스럽게도(?) 나는 낙방했고, 남자친구와 여동생은 합격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내게 공무원은 어울리는 직업이 아니었고 합격할 깜냥도 못 된다 싶어 직장으로 복귀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조금씩 공부를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고시 공부를 놓아버렸다. 참으로 잘한 일이었다. 아직도 하고픈 것이 너무 많은 나니까.
백 분 동안 백 문제를 풀고 답안지에 마킹까지 끝내야 하는 시험, 방대한 공부량에 멘털과 페이스를 잘 유지해야 하는 시험, 건강한 체력에 어느 정도의 관운마저 따라줘야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이 공무원 시험이다. 낙제한 나로서는 자신을 이겨내고 성실함을 증명해 보인 합격자 모두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민낯에 헐렁거리는 옷차림을 하고 독서실로 향하는 내 모습이 거울에 비칠 때면 초라하단 생각이 절로 들었다. 패션에 관심이 많고 남들 시선 깨나 신경 쓰던 나는 누추한 행색으로 집에 오갈 때마다 ‘제발 아무도 만나지 않기를’ 하고 주문을 외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값진 경험이고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고시 공부는 시험에서 떨어지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고들 하지만 내 의견은 다르다. 고시생이 돼보기 전에는 불확실한 현재에 자신의 청춘을 배팅하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와 결단을 요구하는지 몰랐다. 돈이 생명과도 연관이 된다는 자명한 사실조차 몰랐다. 고시 생활을 통해 타인의 삶에 존경과 공감을 아낌없이 표하는 사람이 되었다.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지고 얻은 것은 고작 이것이고 무려 이것이다.
수년이 흘렀지만 유니의 합격 발표가 있던 날이 잊히지 않는다. 새들은 즐겁게 지저귀고 날은 청명했다. 혹시라도 불합격하면 타격을 받을 유니가 걱정되어 새벽부터 오후까지 마음을 졸였다. 두려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담백하게 이렇게 말했다. “붙었어. 고마워. 다 네 덕분이야.” 그가 합격한 것이 어찌 내 덕이겠냐마는 그렇게 말해줘서 아주 오래도록 고맙고 기뻤다. 유니의 합격 소식을 듣고 한동안 엄마는 나를 쫓아다니며 닦달했다. “너도 다시 공부해. 시험 쳐 봐. 엄마 소원이야.” 엄마의 공무원 권유에서 헤어 나오는 데 무려 오 년의 시간이 걸렸다. 여하튼 욕망 아줌마답다. 엄마, 못 하는 게 아니고 안 하는 거야. 안 하는 게 아니고 못 하는 거야. 못 하는 게 아니고 안...... 대한민국 공무원 파이팅!
공무원 국어: 작가 활동에 잘 써먹고 있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