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인계 안 받았어요?

정글정글한 직장생활

by 미세스쏭작가

한량의 삶을 뒤로하고 직장인이 된 지 겨우 두 달 차. 글 쓰고 싶단 생각을 하루에 삼 세 번씩 간절히 했다만. 출퇴근 후 헬스장에 가서 한바탕 달리기로 스트레스를 분출하고 씻고 나면 몸이 흐물흐물 녹아 버린다. 운동 체력과 일상 체력은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따로국밥처럼 논다. 좋아서 하는 운동과 달리 일할 때 발생하는 긴장과 스트레스는 그나마 키워놓은 체력을 우걱우걱 갉아먹고 마음까지 허기지게 만든다. 요즘 나의 직장생활은 정글이다.


출근하고 근 일주일 간 아무도 내게 일을 맡기지 않았다. 다들 바빠서 인수인계를 못 하는 상황이라며 미안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어차피 일도 많지 않으니 편히 있으라 했다.

오. 내가 이렇게나 꿀직장에 당첨 됐다고? 속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가까스로 취업의 관문을 통과한 나를 칭찬했다. 남아도는 시간을 활용하여 사내 문서와 내규를 부지런히 읽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게 정녕 한글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어지러운 내용들이 더러 보였다. 이딴 건 나한테 해당 안 되는 내용이면 좋겠는데?


일이 없는 틈을 타 사내 시스템의 권한을 받는데 산 넘어 산이었다. 메일 계정, 세콤, 각종 인증서를 받는 과정이 너무나 복잡했다. 탐정 놀이하듯 꼭꼭 숨은 담당자들을 찾아내서 전화를 하고 메일을 보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이메일 회신도 주지 않는 베짱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그사이 내게 권한을 모두 받았냔 질문이 많아졌다. 곧 거대한 똥이 투척될 것만 같은데? 슬슬 조바심이 났다. 물론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사내 시스템을 다룰 수 있는 새판이 짜이자마자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전쟁터의 총받이로 불러냈다.

사건사고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인성이 훌륭한 담당자들은 내게 이렇게 따졌다.

"인수인계 안 받았어요?" 응. 못 받았다.

"원래 그런 건 알아서 처리해야 되는 거예요." 원래...라는 말이 이렇게 폭력적인 단어였던가.

"그걸 제가요?" 말을 좀 끝까지 듣고 반문하면 안 되겠니.

"그런 식으로 일하니까 그 부서가 그 모양이지." 전임자 이야기려니 하고 넘어가야지 내가 산다.


심호흡.

마인드컨트롤.

달리기.


퇴근 후엔 헬스장에 가서 달리기를 했다. 살기 위해서 달렸다. 한겨울의 강추위보다 차갑게 나를 대하는 사람들 덕분에 10km를 쉬지 않고 거뜬히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직장생활이 힘들다고 하면 남편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그만둬. 다 엎어 버려."

그러는 당신은 그게 그렇게 쉬워서 여태 공노비처럼 살고 있는고? 그래도 늘 내 편인 남편 덕분에 금방 긍정의 힘을 되찾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안온한 가정이 있고 돌아올 집이 있고 퇴근 시간이 있으니 감사할 수밖에.

리 집 가장이 괜한 고생 말고 집에서 편히 쉬라고 할 때마다 은은한 오기가 올라온다. "그만 둘 정도로 힘들진 않거든?" 어쭈. 제법 적응했나 본데.


입사 둘째 주였던가. 남편과 치킨을 뜯으며 이런 대화를 나눴다.

"나보고 인수인계 안 받았냐고 따지더라?"

"재수 없는 놈들. 그런데 인수인계라는 건 원래 없어.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푸하하. 닭날개를 뜯다가 실소를 터뜨렸다. 우리 집 가장이야 말로 정글에서 잘도 버텨 왔구나 싶었다.


정글에 새로 굴러들어 온 미세스쏭이라는 돌은 터를 잡고 있던 원주민들에게 그저 귀찮은 존재일 테다. 모두 내 맘 같을 수 없다. 그들도 나도 서로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업무 능력과 주변인들의 친절도는 꽤나 비례한다. 일에 적응할수록 차차 포용력도 생기고 자신감도 생겨나는 중이다.

정글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지만 어쨌거나 회사는 정글에 차려진 오성급 호텔이다. (퇴근하고 오는 우리 집은 오백오십오성급 호텔.) 그나저나 다음 주엔 또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하니 온몸에 도파민이 돈다. 아우. 짜릿해.

공간은 많은데 쉴 곳이 없다. 마을버스랑 회사가 똑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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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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