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일, 남초 회사로 출근합니다

너무나도 짜릿한 제3의 사회화

by 미세스쏭작가

남초 회사: 사내 구성원에서 남성의 비율이 높은 상태. 내가 현재 몸담고 있는 회사.


과거 사 년 동안 남초 회사에 다녔다. 수컷들이 가득한 세계에 놓인 나의 직업 만족도는 최상이었다. 적응이랄 게 없을 정도였다. 일 외에 딱히 신경 쓸 게 없는 근무 환경은 신세계였고 나와 잘 맞았다. 의사도 못 고치는 지독한 월요병이 최초로 사 년 내내 없었다. 사무실에서 욕을 숨 쉬듯 지껄이는 말종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여초 집단에 비하면 장점이 훨씬 더 많았다.


“안녕하세욥!” 씩씩한 인사를 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아침을 시작했고 양념 치듯 끼얹는 스몰토크를 주고받으며 안팎으로 탄탄한 전우애를 다졌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전제조건은 정확하고 신속한 일 처리였다. “일 잘한다. 일 처리가 빠르다.” 나란 사람은 두 문장으로 간결히 설명되었다. 잘하면 칭찬받고 못 하면 혼나고. 어차피 일하러 간 건데 일만 하면 된다니. 시종 전 가시방석에 앉아 눈치를 봐야 하는 여자들의 세계보단 천배 이상 나았다.


군것질 없이 못 사는 나는 초콜릿, 사탕, 낱개로 포장된 과자를 비상식량으로 싸서 다녔다. 출근 가방에 서류는 없어도 과자는 항상 있는 사람 바로 나. 혼자 먹기 뭐 하니 주변 동료들에게 자주 과자를 나눠주곤 했다. 남초, 여초 회사의 반응은 상극이었다.

여자 상사들은 “넌 그렇게 먹는데 왜 살이 안 쪄? 진짜 짜증 나. 나 다이어트 중이니까 안 보이는 데서 먹어.”라는 식이었다. 남초 회사의 반응 단순했다. “오. 감사합니다. 냠냠 쩝쩝.”

게다가 이전 회사의 남성들은 나의 밝은 성격을 매우 좋아했다. 감사하게도 궂은일은 남자들이 다 알아서 해주었다. 남초 회사 개꿀. 최고. 난 남초 회사랑 잘 맞는구나. 아싸라비야 콧노래를 부르며 출퇴근했다. 여초 회사에선 눈치를 하도 많이 봐서 면상이 가자미가 될 뻔했는데 진즉 남초 회사에 입사하지 않은 게 후회될 지경이었다.

꼬박 두 해를 쉬고서 운 좋게 같은 회사에 입사했다. 사무실은 달랐지만 여전히 남초 집단의 사무실이었다. 처음 식사하던 날의 분위기는 온화하고 화기애애했다. 남과 여의 비율이 9대 1인 남. 남. 남. 초 사무실이었지만 그 점이 오히려 좋았다. 둘째 날의 분위기는 약간 서먹서먹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일주일 후의 분위기는 어쩐지 조금 더 서먹서먹했다. 삼 주 후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한 달 후의 분위기는 개쒯이었다. 인사조차 주고받는 법이 없는 삭막한 사무실로 출근하는 마음은 젖은 이불처럼 무거웠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면 나보다 어린 남성들조차 “예.”라고 딱딱하게 답하거나 목소리를 내지 않고 고개만 까딱거렸다. 인사는 기본 아닌가요. 사가지 없는 넘들아.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을 좀 빌려 달라고 하면 사물이 버젓이 눈에 보이는데도 “없어요.”라고 답하는 동료를 보며 괜한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다. ‘아. 미국식인가? 여기를 그냥 다른 나라라고 생각해 버리자. 그래도 그렇지 치사한 놈. 쯧쯧. 아니야. 그럴 수 있어. 그러려니 하자.’ 내가 말을 걸면 깜짝 놀라며 부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이거나 갑자기 인터벌 형식으로 달리기를 하는 남성도 있었다. 찐 신세계가 열렸다. 남녀 칠 세 부동석에 가까운 이질적인 사내 분위기로 인해 마음이 거듭 답답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아직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평범한 남초가 아닌 남남남초 회사 사람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한 나는 본래 지닌 성향대로 계속 밝고 다정하게 행동했다. 그럴수록 이게 아닌데 싶은 느낌적인 느낌. 여성과 소통하거나 길게 대화하면 즉시 벌점이라도 받는 제도라도 있는 것인지. 어쩌다 질문을 하면 목소리도 내지 않고 고개만 좌우로 흔드는가 하면 "모르겠는데요?", "예?", "넵."이 대답의 전부인 수컷들... 하. 참 독특하다. 독특해.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강연을 찾아보고 책도 읽었다. 목적과 이득이 따르지 않으면 대화를 거부하는 소시오패스, 일 외의 이야기는 부담스럽게 받아들이는 학자형 인간, 뒷말을 많이 하고 남 욕을 즐기는 기회주의자 등등 다양한 인간 유형이 있음을 배웠다. 특히 협업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 대조하며 이 모든 이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찾았다.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자세로 응하기. 부담을 초래할 수 있는 친절이나 다정함은 출근 즉시 진공포장으로 마음속 깊이 밀폐해 둘 것. 여태 관계 중심적으로만 살아온 내겐 매우 새로운 생존 방식이었다. 괴로워도 즐거워도 퇴근 시간은 제 때 찾아온다는 사실이 가장 큰 위로가 됐다.


그런데 말이다. 평소보다 퇴근이 조금 늦었던 어느 날. 뒤에서 몰래 내 이야기를 해대는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날아와 꽂히는데!?

<미세스쏭작가의 솔직 담백 성장 에세이 다음 편에 계속.>

나의 애정하는 회사 식구들 네 명... 아니. 네 마리... 네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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