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사람과의 관계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은 기간에 반복적으로 들려오던 이름이 하나 있었다.
“혹시 구미호 선생님이 담당자예요?"
“업무 볼 때는 구미호 선생님만 조심하면 돼요.”
"어머. 안 됐다. 구미호 선생님 결재받기 쉽지 않은데."
뭐지 이 불길한 기운은? 나는 업무 일지에 적힌 요주의 인물의 이름과 연락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 사람만 조심하면 된다는 말을 바꿔 해석하면 그녀를 잘못 건드리면 직장생활이 평탄치 못하단 뜻 되시겠다. 마음이 여리고 타인과 부딪치는 걸 몹시 싫어하는 나는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고 목소리도 들어본 적 없는 그녀가 어지간히 무섭고 신경 쓰였다.
얼마 후 포스트잇에 적어 놓은 문제의 번호가 사무실 전화기에 떡하니 찍혔다. 구미호다! 전화벨 소리가 유난히 요란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킨 다음 얼른 전화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미세스쏭작가입니다."
그러자 다짜고짜 들려오는 말이 "...... 하세요."였다.
"네?"
"... 하시라고요."
이 여자 듣던 대로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통성명도 없이 거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뭔가를 하라는데 그 무엇이 뭐시긴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어이가 없던 나는 똥꼬 발랄하게 이렇게 질문함으로써 대화의 흐름을 끊어 버렸다.
"그런데 누구세요??"
"아. 저 구미혼 데요."
여차저차 전화를 끊고 사무실 동료들에게 물어 그녀가 요청한 일을 처리했다.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그것 봐. 장난 아니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렇게 입을 모았다. 그 사람이랑은 잘 지내려고 하지도 마세요.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고 싶다만 결재권을 가진 자와 척을 져 봤자 좋을 게 없었다. 구미호 씨를 아직 제대로 겪어 본 건 아니었기에 이렇게 다짐했다. 남들에게 들은 내용들은 참고만 하고 새 마음으로 그녀를 대하자.
구미호 씨의 강렬한 첫인상을 지우고 색안경을 벗어던진 채 그녀를 대하기 시작했다. 통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보낼 때마다 그녀에게 살갑게 안부를 물었다. 조심스럽고 어려운 마음을 숨긴 채 '난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라는 모드로 대면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화가 오면 "선생님~!" 하며 반갑게 받았고, 업무 메일을 쓸 때에는 내 소통 방식대로 날씨나 요일 이야기 등을 곁들여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차츰 그녀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칼 같이 정확하고 매정하지만 성실한 사람이었다. 소문과 달리 딱히 불필요한 감정을 표출하지도 않았다.
"구미호 씨랑 일해 보니 어때요?" 매운맛 좀 봤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동일하게 대답했다.
"일도 잘하시고 좋으시던데요?"
"어머. 그래요? 신기하네요." 구미호 씨와 잘 지내는 걸 보니 미세스쏭작가 네가 보통 놈이 아닌 것 같단다. 과거 직장에서 별별 빌런들을 다 겪어 본 바 구미호 씨는 그만하면 천사였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산 넘어 산이지만 스쳐 가는 시절인연일 뿐임을 잘 안다. 시절인연이든 쭉 이어지는 인연이든 '상대방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를 생각해 본다. 언제나 바랐듯 친절한데 일도 잘하는 구성원이 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내가 불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이면 문제가 있다 이거야.) 적당히 상처받고 그때그때 나를 잘 다독이며 월급을 향해 전진한다. 뚜벅뚜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