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환기 좀 하면 안 될까요?

산소(산에 사는 소) 같은 여자의 회사 생활

by 미세스쏭작가

함께 사무실을 사용하던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오랜 시간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마스크도 끼지 않은 채 연신 기침을 해대니 어찌나 찜찜하던지. 저러다 말겠거니 하며 버텼으나 그들의 기침은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됐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멀쩡한 나님만 홀로 KF94 마스크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오며 가며 복도에서 만난 직원들이 하는 말 “미세스쏭. 마스크 꼈네요. 어디 아픈가요?”


옆자리 직원이 처음 기침을 해댈 땐 '얼마나 힘들꼬.' 하는 측은지심이 들었지만 사방으로 튀는 그의 비말을 견디긴 여간 쉽지 않았다. ‘마스크를 안 낄 거면 입이라도 좀 가리시지?’ 몇 주 후 보균자의 기침 소리는 컹컹 개 짖는 소리로 진화했다. 사운드는 또 어찌나 빵빵한지 귓구멍이 얼얼할 정도였다. 한 달이 훌쩍 지나자 혹시 폐렴이 아닐까 하는 공포심이 들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사무실 출입문을 열어 놓았다. 그랬더니 고놈이 기침을 컹컹하면서 벌떡 일어나 문을 닫았다. 너 지금 나랑 싸우지는 거야? (아무 말 못 함.)

내겐 건강에 관한 징크스가 하나 있었다. 희한하게 감기가 거의 끝나가는 사람과 접촉하면 그 인간의 감기가 내게 진드기처럼 옮겨 붙곤 했다.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감기 바이러스의 공포와 답답한 사무실 공기에 지친 나는 모처럼 연차를 사용했다. 그런데 휴일을 앞둔 날 저녁부터 몸이 으슬으슬하더니 목구멍에 돌멩이가 낀 것처럼 아파 왔다. 제발. 제발. 아프면 안 돼.

따뜻한 꿀물과 비타민과 영양제를 먹고 잠자리에 누웠다. 결국 징크스의 서막이 열렸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두들겨 맞는 몸살 증상이 일더니 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밤새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눈물을 참으며 병원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내원하여 면봉으로 콧속 깊은 곳을 찔렀다. B형 독감 키트에 빨간 두 줄이 떴다. 나 완전히 새됐어. 처음 걸려 본 B형 독감은 감기가 아니라 악귀 같았다. 코로나보다 더 아프고 끔찍한 통증이었다. 낫기 위해 많은 것들을 지불해야만 했다. 남들에게 독감을 옮기지 않기 위해 병가를 써야 했고 값비싼 링거를 두 대나 맞았다. 병원비로 삼십만 원이 넘게 깨졌으나 별 차도는 없었다. 시아버지 칠순 잔치도 예약해 둔 1박 2일 호텔도 모두 날아갔다. 남편 역시 나 때문에 독감에 감염되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고열에 시달리며 꼬박 육 일을 죽은 사람처럼 누워 지냈다. 아프면 나만 손해라는 말을 온몸으로 깨닫는 계기였다.


점차 열이 내려가고 장기를 토해낼 것 같던 기침도 잦아들었다. 혹시 모를 전염을 위해 꼈던 마스크를 벗어던질 수 있게 됐을 즘 사무실을 이전하게 됐다. 훨씬 넓고 쾌적한 공간으로 오니 숨통이 확 트였다. 마음도 환기가 됐다. 고막을 울리는 기침 소리가 사라지니 별별 게 다 행복했다. 물론 나를 고생시킨 게 비단 기침 소리만은 아니었다. 하여튼 이번엔 수컷들의 세계가 아닌 암컷들의 세계에 표류하게 되었다. 암컷들의 세계는 어떻냐고? 후우. 곧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고 찾아오겠다.

독감이 아니라 마귀였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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