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수필
작은 애는 하늘, 구름, 달, 바다를 참 좋아한다.
시간만 나면 바다로 가서 해조음을 듣고 구름 사진을 찍어 전송한다.
한밤중에 달이 이쁘다고, 하늘을 보라고 전화를 한다.
어제는 또 구름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비행기 소리가 너무 커서 안 들렸다.
내가 옛날식 전화를 하듯 어? 어? 뭐라고? 그러니까 아이가 끊어버렸다.
아이고, 이놈의 비행기!
그러나 거실 창으로 보이는 비행기는 푸른 하늘에서 멋진 비행운을 남겼다.
작은 애가 대학교 3학년 때던가.
이탈리아 밀라노로 박람회 참관을 겸한 연수를 가게 되었다.
경비 전액을 학교에서 대주는 프로그램이라 선정되려고 엄청 공을 들였다.
몇 차례의 인터뷰를 통과하고 연수 대상자가 되었을 때 아이는 환호했다.
저도 좋아했지만 나도 정말 좋았다. 아이에게서 잠시 해방된 느낌이었다.
아이가 밀라노로 떠나는 시간, 홀가분한 나는 선생님들과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때였다.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비행기를 탔어야 할 시간인데.
"엄마, 나 지금 대학병원 응급실이야."
"어? 왜? 비행기 못 탔어? 그럼 연수는?"
대학병원 응급실은 장날 장터보다 더 왁자하고 복잡했다.
응급실 한 구석에서 힘없이 앉아있는 아이가 보였다.
공항으로 가는 데 갑자기 숨이 끊어질 듯한 통증이 왔다고 한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는 대신 119 구급대에 실려 온 것이다.
아이는 겁이 난 것도 같았고 화가 난 것도 같았다.
왜 아니겠는가.
연수를 가기 위해 들인 그동안의 노력과 시간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으니.
수술실 앞에서 기도하는데 간절함 속으로 화가 뾰족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떨치려고 해도 자꾸만 날 쑤셔댔다.
이건 불행이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저 행운이 아닐 뿐이다. 비행운이다.
엄마가 달려왔다. 그리고 감사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멍하니 엄마를 봤다. 참 뜬금없는 노인네 아니던가.
"이렇게 감사할 수가! 만일 비행기 안에서 통증이 왔으면 어쨌을 뻔했어.
하늘에서 내릴 수도 없고, 어쩌면 이렇게 딱 맞춰 통증을 주셨을까."
통증을 안 주시는 게 은총이고 행운이지.
그러나 엄마의 감사함이 너무 커서 나는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수술은 잘 됐고 아이는 밀라노 대신 입원실에서 그 가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