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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뼘 수필 Jan 20. 2024

그 여자들(feat. 후에, 호이안)

따뜻한, 소소한

여정의 마지막 날이다. 

5시 40분 기차를 타기 위해 캄캄한 새벽, 긴 스카프를 두르고 '후에' 역으로 향한다. 

사진 한 장 찍을 겨를 없이 빈 역사를 두리번거리다가 플랫폼으로 간다.  

잡화점들이 즐비한 낡고 오래된 플랫폼에서 다낭행 기차를 기다린다. 


'후에'에서 '다낭'까지 기차를 타기로 한 것은 형님의 참신한 기획이고 탁월한 선택이었다. 

침대칸으로 독립공간이라 누구의 방해도, 눈치도 보지 않고 

탁자를 사이에 두고 오붓하게 마주 앉았다. 베트남 민가와 들판과 산이 같이 달린다. 

무엇보다 동해안을 끼고 달리니 바다와 만나는 것도 큰 매력이다.


이 열차는 호찌민에서 하노이까지 종단 열차. 우리는 그 사이 2시간 반 정도를 달렸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리는 기차는 생각보다 빨랐다. 

문득 현빈과 손예진의 기차가 떠올랐다. 

연착해서 우리도 베트남 어느 구릉의  초록 바나나 뭉치들을 

잔뜩 달고 있는 나무 아래서 하루를 지새워야 할까? 

일도 그런 조짐 없이 기차는 줄기차게 계곡을 돌고 터널을 지나면서 바다를 보여줬다. 



저 바다가 우리의 동해와 이어질까? 

구름 사이로 빛내림을 한 바다 한편이 은빛으로 반짝였다. 

고기잡이배가 바다로 떠나고 한 남자가 해안 바위에서 푸른 미역을 따고 있다. 

그런가하면 기찻길 옆 민가에서는 개들이 어슬렁거리고 가족이 둘러앉아 아침을 먹는다. 

버스로 갔다면 볼 수 없었을 이 기차 여행은 5일의 여정을 너무나 야무지고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게 마무리해 줬다. 

뿐이랴. 

침대칸에 마주 앉은 우리 두 사람은 마치 독립운동가 거나 암살자가 되어 중요한 임무를 띠고 가는 상상이 꼬리를 물었다. 

그 감성은 여전히 남아있다가 다낭 공항 화장실 거울에 느닷없이 나타난 늙수그레한 여인의 부스스한 얼굴이 깔아뭉갤 때까지 나는 내 모습을 전지현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다낭 공항에서 부산 발 비행기를 기다린다. 

호기심 천국, 형님은 가만있지 못하고 어딘가 계속 돌아다닌다. 

중국어에 관심이 많아서 중국 사람 옆에 가서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영어가 유창한 형님 덕에 자유여행이 가능했다. 

정해진 수순이 아니라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갔다가 피곤하면 호텔로 돌아와 잠시 쉬고 다시 또 나갔다. 


사람살이에 관심이 많은 나와 형님은 시장에서 놀았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강에도 여러 번 갔다. 

호이안의 투본강과 올드타운을 돌면서 등 구경을 많이 했다. 후에에서는 흐엉강을 천천히 걸었다. 

실제로는 걸어 다니는 것이 좀 무섭다.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너무 혼잡하고 무질서해서. 대부분 그랩 택시로 이동했다.  

둘 다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후에 성과 왕릉에서도 이틀 동안이나 어슬렁거렸다. 




"뭐해요?" 

공항에서 이 글을 쓰는 중에 주변 탐색을 마친 형님이 씩씩하게 걸어오며 묻는다. 

나는 그녀를 바라본다. 5일 동안 나의 보호자였고 안내자였고 다정한 동무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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