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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신 Oct 07. 2024

3. 방아쇠 효과

총구가 겨눠지다

우리 엄마는 가족이 다 같이 영화를 보는 걸 참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간혹 엄마의 손에 이끌려 나가서, 영화관의 붉은 의자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야 했다. 그리고는 시선을 고정시켜 눈 앞의 큰 화면을 바라보는 것이 내 임무였다. 어두운 공간에서 홀로 빛나는 그 화면을.


매번 가기 싫다고 말을 하지만 막상 영화가 끝나면, 우리 중에서 가장 큰 리액션을 취하는 것은 늘 나였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감수성이 높고, 감정의 폭이 굉장히 넓은 사람이었다. 호불호도 확실해서, 그 영화는 그래서 싫어. 이 영화는 저 부분이 좋았어. 그리 말하며 나는 영화관을 나서곤 했다. 연출이 얼마나 정교했는지, 배우의 연기가 얼마나 세심했는지. 내 눈에는 그런 정보들이 잘도 보였다.


선천적으로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은 대체로 남들보다 읽어내는 정보량이 많다. 그리고 그건 그 사람들의 강점이며 약점이기도 하다.


나는 내 시야에 들어오는 정보량을 주체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불안을 생성해서 머릿속을 장악시킬 때가. 그러다 못해 머리가 폭발할 것 같은 순간이 종종. 아주 간혹 있었다. 뇌가 망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충동적이고 감정적이게 되는 그런 끔찍한 찰나가.


그 깊고... 짙고 또렷하기까지 한. 어찌보면 자연재해를 닮은 감정은 너무나 강렬해서, 나는. 나는 알 수 있었다. 알 수 밖에 없었다. 이 감정은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내 심장에 새겨질 것이다. 낙인, 각인, 흉. 멍. 그래. 이건 오직 나만, 나만이 볼 수 있는 흉터였다.


자못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다. 이번에도 엄마의 인도 하에 보러간 영화. 관심도 흥미도 없이 바라보던 환한 네모칸이 내 목을 조를 줄도 모르고 보러갔던. 영화의 시작은 나름 평범했다. 아닌가? 사실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그냥 내 심장을 움켜쥐었던 '그 시간'만이 내 기억에 남았다. 그게 너무 강렬해서. 마치 불에 제 몸을 던지는 부나방처럼 심부가 타오르고, 다른 기억들은 휘발되었다.


당시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장면은 이미 내게 총알을 발포했다. 관통된 심흉이 비명을 질렀다. 고통스럽고 눈물이 눈을 가리고 숨이 쉬어지지를 않아서. 그래서 도망을 쳤다. 그렇지 않고서는 숨을 쉴 수 조차 없을 것 같았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영화관을 나왔다. 엘리베이터의 사람들이 나를 슬쩍 쳐다보는 시선을 무시하고 집에 걸어갔다. 어떻게든. 무슨 정신으로든... 도착한 집에서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그 영화와 영화사를 저주했다. 씨발. 씨발! 폭언을 참을 수가 없었다. 벅차오른 감정은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복잡하고 진득하며 잔인한 마음은 통제를 벗어났다. 그 영화는 어떤 주의문구도 없이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배려가 없는... 그런 계열의 감수성이 없는 영화였다.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영상은 내게 재앙을 선물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모욕적이며 무자비하다. 집에 도착해 찾아본 영화의 소개글에도 어떤 주의사항이 적혀있지 않았다. 내가 이상한거야? 내가 나약한거야?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건 구조 신청이었다. 살려달라는 SOS였다.


친구는 내 두서없이 뛰쳐나가는 말을 듣고 천천히 위로해주었다. 나는 아마 한동안은 영화관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영화도 아마 잠시나마 보지 못하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영화를 전부 시청하고 집에 온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는데. 내가 이상한 존재인걸까? 내가 문제인건가?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이 입 안을 맴돌았다.


사실 알고는 있다. 그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그 영화가 배려가 부족했다는 점을. 그러나 어쩌면 짧았을 그 시간이 나를 죽여서, 너무나 무력하게 만들어서 눈물이 나왔다. 단말마에 가까운 비명이 절로 나올 것 같았다. 내 가슴에는 또 다른 흉이 지겠지. 이미 덧대고 꿰매기를 반복한 너덜너덜한 심장이다. 그러나 여전히 뛰고 있다. 차마 도려내지도 못한 내 심장이.



목이 졸렸지만 살아있다. 여즉 죽지도 못하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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