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시골에 살던 우리집은 그리 부자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런 시골 동네에서 농사짓고 사는 집이었다. 할머니와 부모님, 그리고 우리 4남매 이렇게 일곱 식구가 오손도손 살고 있었다. 당시 할아버지는 살아계셨는데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생활하고 계셨다. 구체적인 내막은 모르겠으나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본으로 소위 돈을 벌러 가셨다가 그곳에 새살림을 차려서 눌러 앉아버린 것이었다. 요즘 우리나라보다 가난한 국가에서 온 외국인들이 돈을 벌러 한국에 들어오는 것과 비슷하게, 할아버지는 당시 한국보다 선진국이었던 일본으로 돈을 많이 벌러 가셨던 것이다.
일본에서 할아버지가 많은 돈을 벌어다 주지 못한 탓(할머니의 주장이다)으로 부자가 되지 못한 우리 집은, 식사시간에 구운 조기가 올라오면 일곱 식구가 구운 생선의 일부라도 먹으려고 달려들었다. 나는 4남매 중 외아들이었기에 운좋게 구운 생선의 일부(정확히는 “살점”)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부잣집이 아닌 우리 집에서 일곱 식구가 풍족하게 먹을만큼 생선을 살 수가 없었기에 구운 생선은 항상 부족하였다.
유독 할머니는 생선의 머리와 꼬리를 즐겨 드셨는데 생선의 머리에는 뼈가 대부분이어서 살점은 별로 없었다. 노인이시라 치아가 튼튼하지 않으시니 생선뼈를 깨물어 드시지 못하셨을 것이나 할머니는 생선 머리를 잡으시고 하나 하나 뼈를 핥아드시고 있었다. 내가 할머니에게 물어본다. “할머니는 생선 머리가 맛있어?” 할머니의 대답은 “그럼, 생선은 머리 고기가 맛있지.”라고 하셨다.
내가 할머니의 그 행동을 이해한 것은 뒤늦게 철이 들고서이다. 그리고 내가 자식을 낳고 나서이다. 자식을 낳아보니 맛있는 것을 자식에게 먼저 주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 때 그 할머니의 내리사랑으로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자란 것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는 직원들을 위하여 다과류(주로 과자나 캔디 등)가 마련되어 있는데 이는 업무하다가 지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다과류를 섭취하여 업무 효율과 집중도를 높이라고 마련된 것이다. 다과류 중에는 맛있게 보이는 것들이 가끔 있는데, 그럴 때 나도 모르게 맛있게 보이는 과자 몇 개를 골라 주머니에 넣는 나를 발견한다. 그것을 내 딸에게 가져다 주면 내 딸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싶어서이다. 이러한 소소한 ‘도둑질’을 스스럼없이 하는 나도 어쩔수 없는 “부모”인 셈이다. 그제서야 어릴 적 부모님께서 갑자기 주머니에서 맛있는 과자나 장남감 등을 꺼내 주실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부모님의 사랑을 내가 부모가 되어서야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 때 아빠가 그러셨구나….”라고.
요즘도 내가 맛있는 과자를 한 움큼 가져다 집에 있는 대학생 딸에게 주면 이런 리액션이 돌아온다. “아빠, 사무실에 다른 과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