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노예 생활의 고단함
사흘 연휴
기대가 컸다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재밌게 보내야지
첫째 날 테니스 게임하고 절에 갔다. 초파일이니까
둘째 날 테니스 게임하고 외출했다. 쇼핑 목록에 따라 쇼핑을 했다.
셋째 날, 비가 온다
테니스 없는 하루다. 머리가 멍하다. 집 청소를 해본다. 여전히 멍하다.
빨래를 한다. 다시 청소를 한다. 샤워를 한다.
티브이를 켜고 프랑스 오픈 테니스 일 라운드 경기를 시청한다. 파리 롤랑가로스 메인 스터디움에 빈자리가 많이 보인다. 저렇게 빈자리가 많은데 나는 가지도 못 하다니... 한숨이 난다. 프로 선수의 경기를 관전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코너로 몰렸다가 다른 코너로 몰려도 모두 받아낸다. 받아내기만 할 뿐 아니라 그 공으로 공격까지도 한다.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경기가 끝났다. 더 이상 중계를 해주지 않아 시청할 경기도 없다.
주룩주룩 계속 비가 내린다. 오후에라도 그치면 저녁에는 한 게임할 수 있을 텐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테니스를 못 한 날은 뚜껑이 잘 못 얹힌 채 걸어 다니는 주전자가 된 기분이다.
머릿속이 맑지 않고 눈빛도 흐릿하다.
무엇을 해도 활력이 솟지 않고 처지기만 한다.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그러나 운전을 하기도 싫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막상 집 밖을 나가니 머리도 맑아지고 기분도 조금 좋아졌다.
바다 전망이 예쁜 음식점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근처 찻집으로 갔다.
음식점과 마찬가지로 바다 전망이 예쁜 브런치 카페였다.
따뜻한 카모마일을 마셨다.
달콤한 핫초코를 마실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테니스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잠도 잘 오지 않을 것 같아 카모마일을 택했다.
싱겁고 밍밍하기 끝이 없는 하루다.
이야기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멍한 시선으로 창 밖을 바라보다 잠시 졸다가 하였다.
테니스를 하지 못한 날은 약 기운 떨어진 환자, 바람 빠진 이벤트 풍선 같다.
친구들은 장마가 왔다며 비가 계속될 거라고 말했다.
'아 ~ 집에서 발리 연습이라도 해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깜짝 놀랄 필요는 없어요.
'집이 커서 발리 연습을 집에서 하나 보다' 하는 생각도 안 돼요.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한 후 물건을 없애다 보니 방 한 칸이 통째로 비었다.
그래서 바운드 되기 전에 공을 바로 치는 발리는 작은 사이즈의 방에서도 가능하다.
아파트가 아니라 단독주택이어서 층간소음으로 신고를 당할 일도 없다.
'내 집 벽을 내가 치는데 누가 무슨 말을 하랴.'
테니스 중독자가 장마철, 긴 강을 건너갈 계획을 세운다.
카페의 음악 소리도, 친구들의 잡담 소리도 멀리서 들리는 산울림처럼 의미 없는 소리로만 웅웅 거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