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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Aug 22. 2023

수박, 누운 직장인을 일으킨다.

수박, 먹기만 하나요?

아침 여섯 시, 출근하기 위하여 하는 기상은 언제나 힘들다. 

직장인이라면 거의 모두 공감하지 않을까?

알람을 듣고 전화기를 찾아 스누즈 버튼을 누른다. 

오분 간격으로 울리는 알람을 세 번쯤 끄고 나서야 겨우 일어난다.


그러나 여름에는 아침 기상이 그리 힘들지 않다.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할 일이라기보다 먹을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 기상이 힘든 직장인이라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은 먹고 싶은 것들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잠들면 조금 수월하게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치아로 무언가 씹으면 잇몸의 자극이 두개골로 이어져 뇌의 감각이 살아나고 잠이 깨는 듯한 효과를 느낀다.

누가 가르쳐준 것은 아니고 어릴 때부터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다.

어떤 의학 전문가가 이 글을 읽으면 틀리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확실히 각성제의 효과가 있다. 

그래서 눈 뜨면 무언가 먹을거리를 찾는다. 

거기다 당분이 있으면 더욱 좋다.

주로 계절 과일을 먹는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여름 수박이다.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직장 그만두면 차는 별로 필요가 없겠네?"

나는 친구의 말이 떨어져 흙에 닿기도 전에 말했다.

"수박은 누가 사고"

물론 주문할 수도 있으나 단독주택이라는 점도 있고, 음식은 눈으로 보고 사야 하는 습관 때문이기도 하다.

수박이 냉장고에 항상 준비되어 있도록 하는 일은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수박이 없으면 마음이 불안하다.

대형 마트에서 무거운 수박을 사서 차에 싣고 다시 집으로 옮기고 싱크 개수대에 올려서 씻고 냉장고에 자리를 잡고 넣어두어야 한다. 

먹으려면 다시 큰 덩이째 꺼내 싱크대에 올린 후 잘라야 한다.

사흘이면 한 통이 없어지므로 수박을 계속 냉장고에 채워 넣으려면 여름 내내 바쁘다.

다른 식재료나 생활용품을 살 일이 별로 없으므로 오직 수박을 사기 위해 대형 마트에 간다.


아침에 눈 뜨면 수박 먹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또 수박을 먹는다. 

저녁에 할 일을 마치고 샤워를 한 후 곰돌이 푸가 꿀단지를 안고 있는 것처럼 큰 그릇에 수박을 큐브 모양 혹은 이등변 삼각형으로 잘라서 담고 그 그릇을 안고 먹는다.

만족감이 팡팡 솟아오른다.

이렇게 먹고 잠들면 꿈도 빨갛고 초록색의 달콤한 꿈일 것만 같다.

수박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수박과 함께 하루가 끝이 난다.


수박이 나오기 시작하는 초여름은 가까운 과일 가게나 동네 슈퍼 등 어디서나 수박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여름이 정점을 넘어 가을로 접어든다는 입추가 지나고 나면 수박을 보기가 조금씩 힘들어진다.

그럴 즈음이면 대형 마트나 청과시장에 가야 수박을 살 수 있다.

그러려면 조금 더 먼 거리를 운전을 해야 한다.

여름 방학에 가고는 하던 수영장에 둥둥 떠다니는 물놀이장 튜브처럼 

덩실하니 크고 잘 생기고 당도가 높은 수박을 사기 위해 청과시장에 가기도 한다. 

그럴 때는 이번 여름과도 작별이구나 하며 조금 서운한 마음까지 든다.

노인들이 지는 벚꽃을 보며 

'이 봄과도 이별이구나.

내년 봄에 벚꽃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알 수 없는 비애와 향수마저 느끼곤 한다. 


사람들은 수박껍질 버리기가 힘들다고 한다.

수박 껍질은 무생채처럼 채로 썰어 나물을 해서 먹거나 

콩국수에 고명으로 올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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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필러로 얇게 썰어 얼굴에 팩을 한다.

팩을 하면 열감을 없애주고 수분을 보충하는 효과가 있다.

오이가 없어 팩을 못 한다는 등의 걱정은 필요가 없다.

덩치 큰 수박은 그래도 껍질이 남는다. 

남는 껍질은 냉동실에 넣어 꽁꽁 얼린다. 

아이스바처럼 단단해진 껍질을 꺼내 마당에 서서 한 조각씩 툭툭 던진다.

날아간 껍질들은 마당 한쪽에 있는 화단에 떨어진다. 

수박씨 뱉기 놀이처럼 왠지 모를 통쾌함을 준다.

어른이 된 이후로 돌멩이질을 하거나 강에서 물수제비를 해본 경험이 없다.

대신 마당에서 화단으로 수박껍질을 하나씩 던지다 보면 어릴 때 돌멩이로 물수제비를 하거나 연을 날리거나 수박씨를 퉤퉤 뱉을 때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통제에서 벗어난 일탈의 느낌이랄까.

버리지 마라

던지지 마라

등등으로부터의 일탈


'수국 꽃들아 목마르지? 하나씩 골고루 나누어 마시렴'

하고,  마치 좋은 일 하듯, 선심 쓰듯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목표점을 정하고 던진다. 

손목 스냅을 적절히 주어야 골고루 낙하시킬 수 있다.

냉동된 수박 껍질을 화단에 던지는 것은 바닷가 백사장에서 하는 프리스비 날리기보다 더 재미있다. 


여름은 수박의 등장과 함께 시작하고 수박이 눈에 띄게 귀해지면서 서서히 시들어간다. 

안녕, 잘가라

여름아~ 방학아~ 휴가야~ 축제야~ 수국꽃들아~ 그리고 수박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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