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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지붕집 만장이 Oct 25. 2023

프롤로그

종이인형, 틴트 그리고 고양이들


동네에 흉흉한 소문이 도는 집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집에서 일어난 나쁜 일들에 관해 종종 이야기했다.

사업이 망하고 집안이 풍비박산된 이야기에서부터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까지 여러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되며 소문은 돌고 돌았다. 7살 남짓한 나에게 그 집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우리 가족이  그 집으로 이사를 간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이다. 고래등 같은 2층집으로 이사 가면서 우리 가족은 더 이상 집에 대한 고약한 소문 따위는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곳에서 나는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을 보냈다. 물론 양념반 후라이드반이었다. 어마어마하게 나쁜 기억만큼 좋은 기억도 많았다. 나는 요즘도 행복한 기억에 대한 회상을 하고 싶을 땐 먼저 그 집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면 안 좋은 일들 사이에서 뒤죽박죽 얽힌 기억 속 어딘가  반짝이는  순간들을 발견한다. 맞다. 바로 그 순간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요약하건대 자칫 나쁜 일들에 묻혀 죽어가는 기억들을 모아 CPR(심폐소생술)을 해보고 싶었다.


*종이인형


어린 시절에 나는 종이인형처럼 약했고 부실했다. 종이인형에 옷 입히다가 잘못해서 찌익 하고 찢어지면 목이 댕그렁 하고 사라져서 옷이 아무리 많아도 목 없는 인형은 버려야 했던 슬픈 기억이 있는가 하면 그걸 또 살려보겠다고 투명 테이프도 아니고 하얀 반창고로 목을 붙여서 수명을 연장한 것에 매우 만족스럽던 그때를 떠올려 본다. 신해철에게 병아리 얄리가 있었다면 내겐 목에 하얀 깁스를 한 드레스 부자 종이 인형이 있었다.


*틴트

엄마 화장품을 몰래 찍어 바르던 어린 시절 말고 처음 화장이란 걸 해본 건 대학교에 입학한 후부터였다. 화장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입술. 깔끔한 메이크업의 상징이었던 립라이너. 입술 테두리 그리기를 정성스럽게 하고 테두리 안쪽 채우는 걸 잊어버려서 짙은 립라이너만 한 채로 돌아다녔던 기억도 있다. 10대가 인형옷 입히는 것으로 대리만족 했다면 20대에는 직접 내 얼굴과 몸을 꾸미고 다녔다. 틴트는 그런 의미에서 나의 화려한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고양이들

이혼하고 아이를 혼자 키우다가 고양이를 입양했다. 혼자는 외로울 것 같아서 또 입양했다. 키우다 보니 고양이가 너무 좋아서 또 입양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려면 보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도 잘 땐 귀엽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고양이들이 있어 외롭지 않은 중년을 보내고 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이밖에도 지금 당장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로봇청소기, 식기 세척기, 건조기들은 제목으로 달면 너무 길어져서 생략했다.


아 맞다!

제일 내 삶을 스펙터클하고 다이내믹하게 해주는 아들과 남자친구 비단구렁이에게 내 인생에 빠질 수 없는 즐거움과 행복을 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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