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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종근 Dec 15. 2022

to whom may it concern

친구야


요즘에야 잦아들었지만

11월까지 내 근황을 자주 알렸어.

길어봐야 만 하루를 가는 그림일기는

좋든 싫든 대인관계나 그들과의 친밀도가 공개되는,

해시태그를 넣어야 하나 고민되는,

무언가 각 잡고 써야 할 것만 같은

게시물보다는 부담이 덜해.

SNS에는 올리고 싶은데

덜 부담스러운 수단을 찾는다는 게 영 어색해.

어쨌든 멋진 곳, 좋은 사람, 맛있는 음식

눈에 담기 전에 휴대전화에 담긴 것들은

어설프게나마 나의 하루를 설명해주곤 했어.



친구야


너는 바느질을 좋아했어.

스토리를 빼곡하게 올려두는 걸 두고

‘바느질’이라고 한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어.

딱 봤을 때 박음질한 것 같은 모양이기도 했는데,

누군가의 어제와 오늘, 오전과 오후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퍽 어울리는 말이었어.

그 간격이 느슨할지 팽팽할지는 항상 다르지만.

근데 바느질을 시쳇말로 ‘미싱 탄다’라고 하잖아?

‘그리워한다’의 영어 단어가 떠오르더니

아주 관계없는 말은 또 아니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

검고 거친 마분지에 흰색 분필로

내가 도안처럼 비뚤게 누워 있어.

바늘을 든 손들이 나를 채워주고

나는 몇 번이고 완성되곤 했지.

연락이 오갔는지는 중요치 않아,

1년 동안 해온 바느질의 결과가

그저 12월에 돌아본 나일 뿐이야.



친구야


사실 가끔 네가 그리워.

쌓인 스토리를 휙휙 넘기다가

네 것도 무심코 지나치곤

너의 지금이 궁금해서

네 아이디를 검색해서

찾아본 적이 있어.

아이디의 알파벳인지 숫자인지, _는 또 몇 개인지

세고 있는 내 꼴이 조금 웃겼어.

흔하다고 자평하던 네 이름을

난 가끔 찾기 어려운데

내 이름은 그렇지 않잖아?

그게 때론 좀 슬퍼, 내 찾기 쉬운 이름.

무슨 말인지 알겠어?



친구야


너는 외로움을 많이 탔어.

빈 달력을 올려두고서는

누군가 빈칸을 채워 주길 바랐지.

왜 그러나 싶다가도… 다시 생각해보니

그 솔직함이 오히려 부럽기도 해.

그냥 하는, 너무나 의례적인,

알잖아, 밥 한번 먹자는 그런 안부 따위.

그런 연락을 하는 데에 용기를 내야 하고

명분을 찾는 것도 비겁하다면 비겁하지만

불쑥 찾아온 나를 반길지 어떨지,

나에게서 떠난 인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게 난 또 무섭더라.



친구야


며칠 안 남은 올해는 유독 길었어.

너무 기쁘고 영광스러워서,

스러져가는 이들이 가여워서,

내 맘 같지 않은 일들이 너무나 많아서

잠을 설친 날들이 수두룩해.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옛말은

이제 그저 옛말인 것 같아.

서툴러도 소식 전하며 살자.

내년에는 용기 내보겠다는 말은 안 할게,

이런 걱정을 하는 것도 우스울 언젠가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다시 찾아가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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