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이 아닌 집 안을 걸어다니기
“언니는 집에 안 가요?”
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산책을 참 많이 했다. 낭만이라며 별 보러 가자 하고, 운동장 트랙을 끝도 없이 돌고, 걷고 또 걸었다. 그때는 산책을 좋아하는 줄만 알았다.
사실은 외로웠던 거다.
사람들 틈에 있고 싶었던 거다.
과거의 내게 산책이란 외로움을 푸는 행위였다. 운동이랍시고 주변 사람들을 꼬여내서 같이 있을 수 있는 좋은 구실이었다. 한참을 걸어도,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허전하고 헛헛했지만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집에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코트에 단추가 덜렁거리니까 밥을 먹다 말고 꿰매주는, 밥 안 먹고 출근한다고 하니 고구마와 사과를 주는, 밥을 부실하게 챙겨 먹으니까 잘 챙겨 먹으면 스티커를 붙여주겠다며 유치원에서 쓸 법한 칭찬스티커를 주문하고, 신발장까지 나와서 배웅해 주는 사람들..
브런치도 합격할 때까지 매주 수요일 오전까지 올리기로 하우스 메이트들과 약속했기 때문에 꾸준히 시도할 수 있었다. 하메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합격하고 느슨해져서 2주 동안 글 안 썼지만^^;)
얼마 전 심리 검사에서 의존도가 평균보다 높게 나왔다.
너무 타인에게 의지할까 봐 걱정하니,
“누군가에게 흠뻑 의존을 해봐야 홀로서기를 할 수 있어요.”
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기는 어렵지만, 하고 싶었다. 뭐든지 혼자 알아서 처리하고 싶어서 애쓰던 나날들이었다. 사람은 다 잘할 수 없는 건데, 못하면 꾸짖고 다그쳤었다. 그런데 하우스 메이트들은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점을 매력으로 봐주고, 작은 부분까지 챙겨주니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다.
여러 사람과 섞여 살면서 배운다.
마음을 표현하는 것, 누군가를 챙기고 챙김을 받는 것, 가진 것을 나누는 것.
김춘수의 ‘꽃’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애정을 쏟고, 시간을 나누기 전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행인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콜록콜록 기침하는 룸메 책상에 조용히 쌍화탕을 올려두는 사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