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펜하이머의 전기를 다룬 책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오펜하이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이므로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다크나이트>를 보면서 2008년도에 나는 영화를 마무리하면서 히스 레저가 연기했던 조커에 영감을 받아서 <다크나이트>의 조커에 감명을 받은 남자가 캐릭터에 심취해서 조커를 따라 하고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연쇄 살인한다는 내용의 추리 팬픽인 <모방살인마>를 쓸 수 있었다.
단지 조커 연기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성이나 컴퓨터 그래픽에 의존하지 않고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 갔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에 전반적인 이야기를 오마주해서 첫 책을 썼기 때문에 순수 창작물이 아니라 스스로 팬픽이라고 부르고 소개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 이후에 후속작으로 사실적이면서 최고의 추리 소설을 쓰기 위해서 스스로 프로파일러가 된다는 내용의 <두 제자>라는 작품도 썼다. 작가 지망생이었던 나를 작가로 만들어준 놀란 감독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놀란 감독이 3시간짜리 전기 영화를 만들 정도라니... <오펜하이머>는 얼마나 입체적이고 똑똑한 인물일까? 우선 간단히 말하자면 오펜하이머는 작동 원리가 어렵고 복잡한 핵폭탄 개발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며 매우 똑똑했지만 핵폭탄 개발에 기여한 걸 후회한다고 말하면서 미움을 사서 공산당의 첩자로 몰려서 도청당하며 사생활이 폭로당하고 대대적인 망신을 받았다.
이런 정보에 호기심을 느껴서 어느 주말의 아침에 최대한 빠르게 상영하는 것을 골라서 영화를 감상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인터뷰에서도 말했듯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흔하지만 영화 앞에 누구의 영화다라고 소개할만한 영화감독은 놀란 감독 뿐이다'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리고 영국 남자인 크리스토퍼 놀란은 항상 영화 이상의 것을 만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처럼 생각했었나 보다. 처음에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러 왔지만 실제로 영화가 상영되니 오펜하이머가 얼마나 똑똑하면서도 입체적인 인물인지 알 수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핵 폭탄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양자 물리학에 큰 관심을 두었다. 당시에 물리학의 성지였던 한 유럽의 대학에서 물리학을 실험하다가 정신적인 고통을 받아서 자주 트러블이 일어났던 교수의 사과에 독을 발랐으나 사건이 잘 수습되고 부유했던 아버지의 배상을 통해서 무사히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그러다가 한 교수의 추천으로 독일에 괴팅겐 대학교에서 막스 보른에게 이론 물리학을 배울 것을 추천받는다. 그렇게 괴팅겐 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군인인 그로브스의 제안을 받고 핵 폭탄 개발 작전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리더가 되었고 뛰어난 학자들을 많이 보유했던 독일의 나치보다 핵폭탄을 더 빨리 만들기 위해서 보안을 지키는 동시에 핵폭탄 실험을 하기 용이한 뉴멕시코의 사막 한 벌판에 로스앨러모스라는 마을을 세워서 과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군인들이 모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2~3년 간의 노력 끝에 오펜하이머와 그의 동료들은 삼위일체 즉, '트리니티'로 불리는 핵폭탄 실험을 벌였다. 날씨와 관측할 거리를 가늠해서 터트린 최초의 핵폭탄 실험은 성공했다. 하지만 히틀러가 자살해 버리면서 적은 일본만 남게 되었고 진주만 사태로 인해서 일본에 대한 분노 여론과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일념 아래로 두 개의 핵폭탄이 만들어졌고 일본의 군사 핵심 시설이 많았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하였다.
낙진뿐만이 아니라 단 한 번의 폭발만으로 한 도시에서는 약 7만 명 그리고 또 다른 도시에서는 약 5만 명이 즉사한 걸로 알려졌다. 오펜하이머는 핵폭탄이 어디에 떨어질지 그리고 몇 명의 사람들이 죽을 줄 알았지만 자신이 진두지휘해서 수많은 물리학자들과 함께 핵폭탄 개발을 해낸 것을 나중에 후회했다.
물론 일본이 두 발의 핵폭탄에 항복함으로써 2차 세계 대전은 마무리되었고 대한민국은 식민지 생활에서 해방되었고 <오펜하이머>의 개봉일이 광복절인 8월 15일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지만 오펜하이머가 무슨 감정을 느꼈을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도 2차 세계 대전을 종결시킨 데에는 이견이 없었기에 오펜하이머는 세계에서 가장 핵폭탄의 권위자가 되어버렸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쟁에서 이용된 천재들은 늘 감시를 받아야 하고 사상을 의심받아야 했다. 미국 정부의 일부 인사들은 오펜하이머가 핵폭탄을 개발하고 전쟁을 끝냈을 때까지는 그를 지지했지만 에드워드 텔러의 수소 폭탄 개발을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를 옥죄기 시작했고 일본에서 핵폭발이 일어나고 3년 만에 소련에서 핵폭탄을 개발하자 오펜하이머를 소련의 첩자로 보았다.
여기서 잠깐 다른 영화를 소개하려고 하는 데에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컴퓨터의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앨린 튜링을 연기했던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튜링이 크리스토퍼라는 최초의 컴퓨터를 개발함으로 인해서 연합군이 나치와의 싸움에서 승리했지만 나치의 암호를 해석해 버렸다는 걸 들키면 나치가 다시 암호를 변경할 것을 알고 수년 간에 걸쳐서 나치가 아군을 해칠 것을 알고도 비밀로 하여서 많은 아군이 죽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한 연합군은 승리하였고 크리스토퍼라는 기계는 파괴되었다. 튜링도 군사 작전을 도와줘서 연합군의 승리에 큰 기여를 했지만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자였던 튜링은 화학적 거세와 2년의 감옥 생활 중에서 화학적 거세를 선택했고 이
일은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영국 왕실은 튜링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하였다. 하지만 사람이 죽고 나서의 사과는 의미가 없지 않나 싶다.
이처럼 오펜하이머도 핵폭탄을 개발해서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힌 것 같다는 발언을 하고 한때 공산당원들이랑 친하게 지냈으나 아내를 두고 공산주의자인 진 태트록과 불륜을 저질렀었음을 폭로 당했다. 전쟁 이전과 전쟁 중에는 똑똑한 천재들이 사랑받지만 늘 감시와 도청에 시달려야 했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버려지기 일쑤였다. 천재들의 지식은 이용하면서 사생활을 문제 삼아서 인격적으로 모욕을 준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천재들을 대하는 방식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에서는 각종의 내전과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각각 천재들을 등용 또는 이용을 했다. 이러한 천재들은 작게는 전투에서 크게는 전쟁에서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자신의 업적을 비밀로 하면서 살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비운의 천재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나는 그들이 죽고 난 후가 아니라 살아서 업적을 인정받길 바라며 권력에 의해서 난도질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건 혹시 몰라서 미래의 천재들을 위해서 말을 하는 것인데 스스로 똑똑함을 안다면 그것을 드러내지 말고 평범하게 살았으면 한다.
다행히 놀란 감독으로 인해서 <오펜하이머>의 전기 영화가 나오고 그의 잘못과 성과를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게 내용을 실은 점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펜하이머가 스트로스를 망신을 준 건 잘못이지만 그에 앙심을 품고 첩자로 만들려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스트로스는 더 잘못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라도 오펜하이머가 첩자가 아닌 애국자임이 밝혀져서 다행이었다.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면서 하고 싶은 말은 오펜하이머는 우리 대한민국을 식민지 생활에서 해방시켜준 인물이다. 제3국에 살고 있는 나도 이 정도로 생각을 하는 데에 오펜하이머의 전기 영화를 지금 영화관에서 보고 있을 미국인들은 얼마나 더 감격스러울지 짐작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