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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 Mar 13. 2016

이적생의 이야기 12

이미 예상한 바대로 이야기는 흘러갔다.

"2월 12일 토요일"



설날도 지나가고, 마지막 경북대학교 결과만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12일 낮에는 연세대학교 학업계획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많은 도움을 줬었던 태진이 형의 결혼식도 있었고, 내일 고등학교 동창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기에 오랜만에 친구들이 다들 한자리에 모였다. 결혼을 하는 친구와 몇몇은 수요일쯤에 따로 모였었다.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결혼을 하는 녀석이었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모르는 우리는, 13일에 있을 결혼식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개략적이나마 계획을 짰었기 때문이다.


내가 맡은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아무도 축가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내가 축가를 맡게 되었다. 준비했던 시험도 다 떨어진 마당에 축가라니, 정말 난감했다. 내가 즐겁지 않은데 남을 축하한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가 내게 축가를 부탁했던 시기는 시험 원서를 쓰기 이전의 일이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번복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그리고 12일, 오늘 저녁에는 결혼식을 앞두고 오래간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였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도 있고,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나는 모르는 친구들도 있었다. 오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내 친구였기 때문이다.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던 친구도, 내가 모르는 친구였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앉아있는데 앞자리에 있던 친구가 말을 건다.


"무슨 일 있나? 안색이 안좋노."

"아… 그냥 요즘에 하는 일이 잘 안돼서…"

"일? 무슨 일? 니 사업하나?"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잘 안 풀리네."

"안 풀리는 건 다 똑같지 뭐…"

"야, 강현이 니 SKY 근접했다매." 오랜만에 본 성진이가 갑자기 내게 말한다.

"최종에서 다 떨어졌다." 내가 대답한다.

"내년에 되겠지."



오랜만에 친구들을 보면 즐거워야 하는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썩 기분 좋기만 한 자리는 아니다. 아무래도, 친구들은 그래도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하고 취업도 하고 하는데… 나만 그 자리에 정지되어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누구는 결혼을 하는데, 난 아직 학교도 제대로 못 간 상황이고… 친구가 결혼을 한다는 건, 즐겁고 축하를 해주어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니, 씁쓸하기만 하다. 저녁을 먹고, 간단하게 맥주를 한잔 하고 가자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경북대학교 최종 결과 발표날이다. 오늘은, 그냥 술자리도 있고 해서 내일 집에 가서 확인을 해보려고 하는데,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보챈다. 지금 확인을 해보라고 말이다. 때마침 노트북을 가져갔던 상황이라, 노트북을 꺼내서 경북대학교 홈페이지에 접속을 해서 이름과 수험번호를 넣고, 확인을 해본다. 이번에도 익숙한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혹시나 하는 희망은 있었지만, 결국은 역시 나로 끝이 났다. 이번에도 탈락이다. 연세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 1차를 합격하면서 이번에는 뭔가 하나 건져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은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수능을 준비하는 것이다. 우선, 내일 있을 친구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고 말이다…


"2월 13일, 친구 결혼식"



아침에 눈을 뜬다. 어제 마지막으로 확인을 했었던 경북대학교마저 탈락을 하긴 했지만, 오늘은 친구 결혼식이다. 축하를 해주러 가야 한다. 게다가, 중요한 축가를 맡기도 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컨디션을 조절을 해야 한다. 아침부터 축가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라니, 노래는 저녁에 불러도 컨디션이 안 좋으면 힘든데 말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전략은, 아침 내내 아무것도 안 먹고 물만 마시기였다. 아무래도 배가 부르면, 노래를 부르기가 힘이 드니,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먹으면,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노래가 잘 안되니… 시험 탈락의 충격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축가를 불러야 한다.


그냥 노래도 아니고, "축가"를 말이다. 축가… 말 그대로 축하하는 노래인데, 이 상황에서 과연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온다. 하지만, 지금 와서 대타로 쓸 사람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무대에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등 떠밀려서 가는 그런 상황이 된 것이다. 결혼식장에 도착을 해서, 친구들과 기다린다.


나와 사회를 맡은 친구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웨딩카를 꾸미러 내려간다. 어차피 해야 할 것, 그냥 기분 좋게 노래를 부르고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리만큼, 순서를 기다리는 내내 긴장이 안된다. 슬슬, 긴장이라는 감각에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노래가 노래가 시작이 되고 MR이 들려오니, 긴장감이 급격히 몰려온다.

혹시나 가사를 잊어버리거나 박자를 놓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말이다.


'연습하던 상황과 똑같다고 생각을 해버리자… 눈을 감아버리자…'


그렇게 눈을 감고, 평소에 연습하던 곳이라고 생각을 하고, 노래를 부르니, 그나마 긴장이 덜된다.

1절이 끝났다. 잠시 눈을 떠 본다.


'원래 노래가 이렇게 길었나… 평소에는 1절이 금방 지나갔었는데…'


정말, 2절을 부르기 싫어질 정도로… 채 5분도 안 되는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졌다. 2절 후반부에, 숨이 차고 힘이 들어와서 약간 고전을 했지만, 여태가지 연습했던 것 중, 가장 잘 불렀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물을 많이 마시는 작전이 유효했던 것 같다. 그렇게, 친구는 결혼을 했고, 나도 내 임무를 완수했다. 이제 오늘 저녁부터는 수능을 준비할 준비로 전환하면 되는 것이다.



"2월 14일, 월요일"



집에서 대구에 재수학원은 어디가 좋은지에 관해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다. 인터넷으로 알아보기도 하고, 주변에 잘 알만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다 보니, 자연계는 대구에서 '송원학원'이 가장 낫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우선, 학원이 어디 있는지 한 번 대충 약도를 보고, 시내로 나간다. 맥북 팜레스트도 깨진 지 오래되었는데, 여태 시험 준비다 뭐 다해서 고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험을 치고 나서 접수를 해두었는데, 부품이 도착했다고 아침에 연락이 왔었다. 그래서 시내로 가는 길에 맥북을 맡겨두러 가는 길이었다. 애플스토어에 들러서 맥북을 맡기고, 학원으로 향한다.


직접 가서 상담을 받아보는 편이 가장 정확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간 후, 반월당에서 지하철 2호선으로 환승을 한다. 학원은 수성구에 위치하고 있었고, 2호선 '수성구청'역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1시에서 2시쯤 된 시각, 학원에 도착을 했다. 공교롭게도 오늘이 학원 개강 첫날이었다. 덕분에 학원은 어린 학생들로 붐볐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나이에 학원에 재수학원에 다니자고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끄러운 일이었는데, 하필이면 학생들이 많은 시간에 와버리니,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상담은 받고 가야 할 것 같은데… 과감하게 들어가서 상담을 받아보려 하지만, 이미 누군가가 상담을 받고 있다. 의자에 앉아서 기다린다. 상담이 끝나고, 상담을 하고 계시던 분에게 말을 걸어본다.


"들어와서 앉으세요." 하고 상담을 하시는 분께서 말한다.


민망하고 뻘쭘하지만 들어가서 기다리니, 상담 선생님이 오시고, 어떻게 왔는지에 관해서 물어본다. 내가 재수를 하겠다고 하자, 왜 지금에서야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물어본다. 여태까지의 자초지종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잘 왔다고 한다. 어차피, 약대 진학을 함에 있어서 출신학교 이름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묻는다.


"수학은 잘 하나?"

"아뇨, 고등학교 때도 수학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수학을 안 한지 8년도 넘은 것 같습니다."

"그럼 좀 힘들 수도 있을 건데…"

"네, 그것 때문에 제일 고민이 됩니다."

"그럼, 우선 연고대반에 들어가서 한 번 해보자. 담임선생님이 수학 선생님인 반에 넣어주면 아마 도움이 많이 될 거야. 진만영 선생님이라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형이 있거든 그 형 반에 넣어줄게."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수학을 준비해서 되긴 될까요?"

"어느 정도까지 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수학 전혀 못하던 얘도 한 1년쯤 하니까 3등급은 나오더라고, 우선은 한번 해보자."

"네, 그런데 현실적인 질문을 좀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여기 학원비랑 그런 것들은 얼마 정도나 합니까?"

"잠시만, 내가 가져다줄게." 상담하시던 선생님이 말씀을 하시고, 프린트물을 가져다준다. 거기에, 학원비와 기타 급식비 등에 관한 것들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연고대반이라, 학원에서는 수준별로 분반을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자연계열의 경우 주로 수학을 기준으로 분반을 하는 것 같았다. 수준별로 서울대특반, 서울대반, 연고대반 순이었는데, 내가 연고대반으로 간다는 건, 한 마디로 꼴찌 반에 들어간다는 의미였다. 우선 집에 가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해봐야 하기도 했고,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하기도 했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필요한 물품도 구입을 해두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오늘은 확실하게 결정을 잘 못할 것 같습니다. 집에 가서 어머니랑 이야기도 해봐야 하고…"

"그래, 그래, 우선은 마음을 먹고 오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1주일쯤 여유를 가지고 한 번 생각해봐."

"네, 그런데 오늘부터 개강이면, 1주일 동안 진도 나가는 거 아닌가요?"

"음… 그렇기는 한데, 어차피 진도는 천천히 나가니까, 크게 문제는 없을 거야, 수업 진도보다는 마음 상태가 중요하니까 정리할 거 다 하고 오는 게 좋을 것 같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조만간 다시 보자."


학원에서 나와서 우선은 경북대학교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에서 아는 경북대생의 사물함을 빌려서 같이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거기에 보관했던 책과 짐들을 다 가져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다. 양이 너무 많이서 한 번에 가져가기에는 힘들어서, 이틀 정도 걸쳐서 집으로 가져가야 할 것 같았다. 일부의 책을 집으로 가져온다. 집에는 때마침 어머니가 계셨다. 학원에 나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설날에 형과 셋이서 이미 어느 정도는 이야기를 해 둔 상황이라, 담담하게 받아들이시는 듯했다. 그래도, 학원비며, 교재비, 교통비 등등 돈이 꽤 많이 것이라, 걱정을 많이 하시는 듯해 보였다.



▲ 그 때 구입했던 자명종...


"2월 15일 화요일"



일어나서 어제 입고시켜두었던 맥북을 찾아오고, 시내에서 자명종과 다이어리를 구입한다. 평소에는 공부시간과 계획을 노트북에 적어두었는데, 이번에 학원을 나가게 되면 노트북을 들고 다니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이어리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 다이어리는 꽤 비싸서 고민을 했지만, 내 마지막 공부 기록을 남겨둔다는 것을 생각을 하니, 오래간만에 한 번쯤 사치(?)를 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경북대학교 도서관으로 가서, 사물함에 있던 책을 마저 꺼내온다. 3-4년간 정들었던 곳인데, 떠나려고 하니, 시원섭섭했다. 전역 이후에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이니 말이다… 좋은 결과를 가지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서 섭섭하긴 하다. 이제부터는 학원으로 들어가서 수능시험을 칠 때까지는 꼼짝없이 공부만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마음의 준비도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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