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약 다이어리> 처음 약을 삼킨 날

by 산책이

제목 : 처음 약을 삼킨 날


수능을 몇 달 앞두고 잠을 설쳤다. 온몸에 긴장감이 감돌며 근육은 팽팽한 고무줄처럼 굳어 있었다. 그 시절, 수능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잠깐만’ 하고 외칠 새도 없이 인생의 주사위는 이미 11월 셋째 주 목요일을 향해 굴러가고 있었다.


밤마다 불을 끄고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잠을 청했다. 잠이 부족해 수험생으로서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고, ‘반드시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수면 시간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

그 무렵, 엄마는 케케묵은 아빠와의 갈등으로 불면에 시달렸고 병원에서 수면제를 처방받기 시작했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약에 의존하기는 싫지만, 잠을 못 자면 제정신으로 살 수가 없어.”

그러곤 수면제 한 알을 반으로 잘랐다. 그리고 다시 반으로 쪼갰고, 딱 그만큼만 자기 전에 삼켰다.


잔뜩 긴장한 수험생 딸이 걱정됐는지, 엄마는 수능 전날 자신이 먹던 수면제를 건넸다. 한 알도 아닌 4분의 1 조각이니 괜찮을 거라며 나를 안심시키고 얼른 꿀꺽 삼키고 자라고 했다.

‘잠을 설쳐서 시험을 망치면 최악이지 않나’ 하는 생각에 나는 마치 마법의 약처럼 수면제 조각을 꿀꺽 삼키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눈을 뜨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수면제를 입에 댔다. 인생의 중대사였던 수능을 앞둔 그날, 약을 삼켰다. 하지만 진짜 함정은 내 인생의 중대사가 수능만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긴장과 불안에 휩싸인 밤이면 내일의 나를 위해 약을 삼키기 시작했다.


처음엔 편안하고 편리했다. 수면제 효과는 정확하고 일관됐다. 복용 후 딱 6시간이 지나면 눈이 저절로 떠졌다. 마치 몸속에 알람 시계를 삼킨 것처럼, 언제나 같았다. 단 4분의 1조각으로 간편하게 마법 같은 6시간을 얻었다.


병원에 가지 않아도 집엔 엄마의 약통이 있었다. 야금야금 한 조각씩 작은 알약을 빌려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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